욕망의 항아리
이와쨩의 생일선물 본문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을 한 장 넘긴 오이카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있다. 6월. 아직 찾아오지 않은 6월이 그를 가슴 설레게 만들었다. 10일에 커다란 동그라미와 별표를 그려놓고 자그맣게 ‘이와쨩 생일!’이라고 쓰여 있었다.
“올해는 깜짝 이벤트를 할까?”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의 생일을 처음 축하하는 건 아니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와 초등학교 배구클럽에서 처음만나 친구가 되어, 지금까지 쭉 같이 있었으니까. 집이 가까웠고, 부모님도 서로 친하셨기에 서로의 생일엔 서로가 빠질 수 없었다.
오이카와에게 올해 이와이즈미의 생일은 특별했다. 그럼 지난날은 특별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늘 특별했다. 다만 올해와 지난날의 차이점을 얘기하자면 생일을 축하하는 마음이라고 그는 대답할 것이다.
처음엔 분명 우정으로 시작했다. 만나서 놀면 즐거웠고, 헤어질 땐 당당하게 웃으며 ‘내일 만나자’ 라고 웃을 수 있었다. 그럼 언제부터 좋아했는가. 오이카와는 잠시 생각을 하는가 싶더니 싱겁게 웃었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웃겼기 때문이다. 그냥 어느새 부턴가 좋아하고 있었다. 눈은 늘 이와이즈미를 향해 쫓고 있었고, 그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향해 웃으면 질투도 났다. 그래서 그의 생일이 다가올 때면 기쁨과 동시에 조바심이 났다.
생일 선물이 맘에 안 들면 어쩌지, 라는 단순한 고민부터
내 마음을 몰라야 되지만 한편으로는 알아줬으면 좋겠어, 하는 복잡한 갈등까지.
“이젠 그런거 신경 안 써도 되는 걸~”
이젠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게 매우 좋았다. 오이카와는 며칠 전부터 작성해온 선물을 종이에 한번 끄적이기 시작했다.
벌써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이와쨩의 생일선물
Writer. 초아(@HQ_choa)
“하암.”
다음날. 아침 등굣길. 오이카와는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더니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옆을 나란히 걷던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모습에 혀를 찼다.
“내가 일찍 자라고 했지.”
“헤헤헤. 이와쨩 내 걱정해주는 거야?”
오이카와가 헤벌레 웃으며 이와이즈미의 몸에 달라붙었다. 그것만으로 모자랐는지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고개를 도리질치기까지 했다. 이와이즈미는 몸이 옆으로 기울지 않기 위해 다리간격을 벌렸지만, 그럼에도 몸은 기울어졌다. 그게 이와이즈미의 화를 돋우었다.
“망할카와 3초 준다.”
이와이즈미는 속으로 숫자를 셌다. 3, 2. 마지막 1을 세려할 때 오이카와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떨어졌다.
“이와쨩 너무해.”
우리 사귀는 사이인데. 오이카와는 툴툴거렸다. 딱 봐도 얼른 날 달래줘, 하는 표정이었다. 옛날의 이와이즈미라면 오이카와가 그러거나 말거나 무시하며 지나갔을 것이다. 그럼 오이카와가 ‘히잉’ 이라는 개가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심히 뒤를 쫓아왔을 테다.
그럼 지금은? 이와이즈미는 전처럼 오이카와를 무시하고 갈 길을 가야할지, 아님 달래 줘야할지 망설여졌다. 무시하고 지나치려니 오이카와가 삐져서 피곤할 거 같고, 달래주자니 누군가를 달래본 기억이 별로 없어 어떻게 달래줘야 할지 몰라,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오이카와는 귀여움에 숨 막혀 죽을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껴안아 키스를 하고 이와쨩이 자신의 것이라는 흔적을 남겨 아무도 넘볼 수 없게 만들고 싶었다.
“몰라!! 그냥 간다!”
오이카와에게 당했다. 그렇게 생각한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지나쳐 걸어갔다.
“이와쨩 귀여워!!!!”
“시끄러!!!!”
이와이즈미의 귀 끝이 빨갛게 달아오른 걸 본 오이카와는 열심히 뒤를 쫓더니 곧 나란히 걸었다. 이와이즈미를 힐끔 쳐다보았다. 묘하게 자신을 의식하는 모습이 보여 오이카와까지 가슴이 쿵쾅거렸다. 앞을 보다가 다시 슬쩍 봤다. 너무 의식한 탓일까. 오이카와의 손끝이 이와이즈미의 손끝과 맞닿았다.
“…이와쨩.”
“……왜.”
“손. 잡아도 돼?”
“……….”
“응?”
“몰라. 묻지 마, 쿠소야로가….”
헤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손을 몇 번 톡톡 건드리더니 이내 손이 포개어졌다. 부드럽게 손에 깍지를 끼자, 이와이즈미도 아주 천천히 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이더니 오이카와의 손에 조심스레 깍지를 꼈다. 두 사람 사이엔 더 이상 주고받는 말은 없었다.
학교 교문이 보일쯤. 두 사람은 맞잡았던 손을 풀었다. 이와이즈미가 학교에서는 둘 사이의 관계를 비밀로 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오이카와는 그 부탁이 썩 맘에 들진 않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이와쨩의 부탁이니까. 이와쨩을 곤란하게도, 미움 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오늘도 그는 사랑하는 이와쨩에게 벌레가 꼬이지 않기를 바랐다.
“그럼 나중에 봐, 이와쨩.”
“오냐.”
오이카와는 손을 흔들며 이와이즈미가 교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오이카와도 교실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머릿속엔 오늘 방과 후 일정이 그려졌다.
“그러니까, 이 문제는 x가 y를…….”
한참 진행되고 있는 수업시간. 손을 턱에 댄 채 교과서를 보던 오이카와가, 지루함에 창가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운동장에는 체육 선생님이 농구공을 들고 학생들에게 열심히 설명하시다,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지목했다. 잠시 후 이와이즈미가 무리에서 나와 선생님 옆에 나란히 섰다. 아마 시범을 보이기 위해서겠지. 오이카와는 농구공을 튀기며 드리블을 하는 그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역시 이와쨩은 못하는 운동이 없다니까.
오이카와는 반애들 앞에서 시범을 보이는 그가 자랑스러웠다. 오늘 하루 기분이 좋아서인지, 계속 생일선물을 생각해서인지는 몰라도 시간은 무척 빠르게 흘러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점심시간이었고. 지금은 벌써 방과 후였다. 가방정리를 마친 오이카와가 서둘러 이와이즈미네 반으로 향했다. 마침 이와이즈미도 교실 밖으로 나오려던 찰나였다.
“이와쨩!”
반가움에 오이카와가 먼저 손을 높이 들고 흔들었다. 이와이즈미가 피식 웃더니 무뚝뚝하게 그를 반겼다.
“왔냐.”
“응. 가자.”
오이카와가 웃으며 이와이즈미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개었다. 손가락 마디가 그의 손 틈 사이로 들어갔다. 그의 단단한 뼈마디가, 미미한 온도가, 수분을 머금은 감촉이. 그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와 같은 마음으로 닿아있다. 심장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망할카와. 지금 뭐하냐.”
“응? 손잡았는데?”
“이게 어디서 개수작이야!!”
이와이즈미는 비어있는 손으로 그의 등을 내리쳤다. 갑작스런 고통에 오이카와는 잡고 있던 손을 풀어버렸다. 이와이즈미는 가방을 다시 고쳐 매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앞서가는 그의 귀 끝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화내는 표정 속에 부끄러움이 보였다.
아 진짜 이와쨩 너무 귀여운 거 아니냐고.
진한 키스를 한 뒤, 그것보다 더 심한 짓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상상하는 것도 잠시. 오이카와는 잽싸게 머리를 흔들었다. 이와이즈미의 야한 표정이라니. 상상만으로 아래가 피로 쏠렸다. 혹여 이와이즈미에게 불순한 생각을 들킬까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ㄱ,그럼 조심해서 들어가. 이와쨩.”
“그래. 너도…그…조심해서 들어가고.”
“응. 연락할게.”
머릿속에서 야한생각이 지워지지 않아,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어버렸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볼은 여전히 붉었다. 다행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싶어 오이카와는 속으로 안심했다.
맞잡았던 손을 천천히 놓은 뒤,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도 오이카와는 발걸음을 떼지 않았다. 2층 이와이즈미네 방에 불이 켜지는 모습까지 본 뒤에야 그는 발걸음을 돌렸다.
“아슬아슬하겠는데.”
이와이즈미네 집을 지나치며 오이카와는 핸드폰 시계를 보며 중얼거렸다.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구겨진 종이를 꺼냈다. 종이엔 어설픈 반지 그림과, 간단한 설명이 적혀있었다. 입가엔 옅은 미소가 띄우더니, 다시 주머니 속으로 종이를 넣었다.
오이카와는 주머니를 두 번 정도 툭툭 두드린 다음 달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엔 자신이 상상하고 있는 반지를 이와이즈미의 네 번째 손가락에 껴준다. 그럼 이번에는 이와이즈미가 자신에게 반지를 껴준다. 그리고 허리를 조금 굽혀 이와이즈미와 시선을 마주하고, 입술을 포갠다. 상상만 해도 달콤해지는, 그야말로 완벽한 해피엔딩이었다.
“이와쨩….”
행복감에 젖어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달리던 속도가 느려졌다. 눈앞에 빨간불인 신호등이 보였다. 그는 지금, 환상과 현실의 중간에 있었다. 눈앞의 현실은 보이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환상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행복의 여운에 젖은 것도 잠시. 자신을 부르는 낯선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저… 오이카와씨?”
“응?”
오이카와의 옆엔 일정 거리에서 쭈뼛거리는 같은 학교 후배로 보이는 여학생과, 그 학생의 친구로 보이는 여학생이 있었다. 그의 기분은 몹시 언짢았다. 비록 상상이지만, 자신과 이와이즈미의 사랑을 방해 받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물론 이 여자아이가 고의로 그런 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무슨 일이니?”
“아… 저기… 그게…….”
자신의 질문에, 여학생의 얼굴이 붉어졌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보였다. 뭘 말하고 싶은지 그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에게 이런 식으로 접근해온 여자아이들이 제법 있었으니까. 평소의 그라면 큰 불만 없이 먼저 차분히 기다려줬을 것이다.
그 또한 그녀들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기에.
오이카와 토오루 역시, 좋아하는 사람에게 진심을 전한 적이 있으니까.
“ㄱ, 그러니까. 언제나 응원하고 있어요.”
“응. 정말 고마워. 그럼 오이카와씨는 급한 볼일이 있어서… 먼저 실례해도 될까?”
“아. 그러셨구나. 붙잡아서 죄송해요….”
“아냐, 응원 고마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마침 초록 불로 변해 있었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머릿속엔 아직 가게의 문이 열려있길 바라는 소망과, 이제 더는 지체할 수 없다는 다급함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뒤에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그의 귀에 닿지 못했다.
일은 순식간에 벌어져서, 오이카와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알 수 없었다. 몸에 충격이 닿았다. 아프다고 느낄 겨를 없이, 하늘로 날았다. 그 순간 많은 것들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이와이즈미를 처음 만난 자신. 그와 함께 배구를 하는 자신. 그를 좋아하던 자신. 우정과 사랑 속에서 고뇌하던 날들. 그에게 울면서 고백한 자신과 그걸 받아준 그. 설렘의 가득이었던 나날.
그 수많은 장면 속에서. 한 장면이 유독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와이즈미가 울고 있었다.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손을 뻗고 싶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붕 떠오르던 느낌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중력의 힘에, 빠르게 추락하였다. 몸이 지면과 닿으며 굉장한 소리가 들렸다. 그 직후 고요했다. 통증이 느껴지지 않아, 이대로 죽음을 맞이한 줄 알았다. 하지만 다행이도 이어지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그는 안도했다.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었다. 흐릿하지만 하늘이 먼저 보였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상황을 파악하고 싶은데, 무언가로 고정이라도 시킨 것 마냥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곧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오이카와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아까 헤어졌던 여자아이라는 걸 알았다.
“ㅎ,학생… 괜찮아?”
불안에 떨고 있는 남성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오이카와는 힘겹게 눈을 깜박였다. 그의 시야에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다시 눈을 깜박였다. 이번엔 얼굴이 바뀌었다. 남자의 얼굴만이 선명히 보였다. 마치 카메라 렌즈의 초점을 맞춘 것 마냥.
“이와쨩…….”
뇌리에 박혔던 장면과 겹쳐졌다. 자신이 그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생각이 괴로웠다. 눈물을 닦아주고 미안하다고 세게 끌어안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꼭 안아줄 힘마저 없어서, 비참할 정도로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누구보다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눈물을 흘릴 때조차 슬퍼서 눈물 짓는 것이 아닌, 행복한 의미로 울리고 싶었다.
그렇게 맹세했던 자신인데. 그런 내가 너를 슬프게 만들었구나.
너를 상처 입힌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어.
분노, 슬픔, 좌절, 실망. 부정적인 감정이 한데 어우러져 그를 깊은 나락 속으로 끌어내렸다. 의식이 점점 멀어져갔다.
∴ ∴ ∴
이와이즈미는 핸드폰을 붙들고 오이카와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이 집에 도착한 뒤, 10분 정도 흐르면 반드시 여자아이들이 쓰는 이모티콘을 달아‘나도 집에 도착 했어!’라고 문자를 보내왔는데….
벌써 20분이 지났다고 망할 오이카와.
그는 흑역사가 생긴다는 창피함보다, 지금 당장의 불안함을 지우고 싶었다. 먼저 문자도 보내보고 연락도 해보았지만 전화 연결은 되지 않았다. 집으로 쳐 들어갈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었지만 그건 좀 오버 같아 엄두도 못 내었다. 시간이 1분, 또 1분이 흐를수록 커지는 불안에 책상에 얼굴을 파묻었다.
고백할 생각도, 연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 세상의 시선이 무섭기도 했고, 오이카와에게 거절당해 다시 친구가 되지 못할까봐. 그게 가장 두려워서. 불쌍한 제 마음에 일부러 채찍질을 하였다. 가능한 사랑일 리 없다고. 친구에게 이런 마음을 품는 자신이 너무 더럽고 싫었다. 소꿉친구가 이런 마음을 품고 있는 걸 안다면 얼마나 싫을까.
상처받는 마음에 일부러 더 생채기를 냈다. 좋아하는 마음이 더 커지지 전에 그 싹을 잘라내고 싶었다. 자신이 이 감정을 정리한다면 그와 자신은 언제까지고 진정한 친구일 테니까. 그래서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했을 때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노력했다.
그 노력도 집에 도착해, 혼자가 되면 다 소용없었지만 말이다.
오이카와가 누군가의 것이 되었을 땐, 마음속에 장마가 내렸다. 솔로가 되었을 때 안심하는 자신이 있었다. 자멸감에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다. 사라지게 된다면 이 고통과도 이별일 테니까.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를 희비의 교차. 계속 고통 받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오이카와가 갑자기 잘 사귀고 있던 여자 친구와 이별을 했다. 그의 사귀는 사람은 자주 달랐다. 주로 여자 친구 쪽에서 그에게 고백을 했고, 이별 또한 그녀들이 먼저 꺼냈다. 그래서 이번에도 이별을 했다고 들었을 때, 당연히 차인 줄 알았다.
“아냐.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어.”
평소 같으면‘이와쨩… 나 또 차였어. 위로해줘~’하며 자신에게 달라붙어 징징거렸을 텐데. 겉으로 짜증을 내면서, 그래도 이 녀석이 돌아오는 곳은 자신이구나. 그 부분에 자신을 위로하며 오이카와의 응석을 받아주는 게 당연한 일인데….
오늘따라 왜 진지한 건데, 멍청카와.
이와이즈미는 평소와는 다른 진지한 분위기에 불편했다. 심장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빠르게 뛰고 있었다. 눈을 마주치기 어려워 시선을 조금 아래로 뒀다.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면 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아, 그냥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이와쨩.”
“그래.”
“…나. 이와쨩을 좋아해.”
“…….”
좋아해. 그 말을 그동안 자신은 얼마나 듣고 싶어 했는가. 내 불쌍한 마음이, 스스로 상처 냈던 아픈 마음이 욱신거렸다. 마치 울음을 토해내듯.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상처를 받는 자신이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말을 꺼내는 거야?
순간 감정에 주체할 수 없었다. 기뻤지만 너무나 화가 났다. 이성이 돌아왔을 땐, 그녀석의 뺨을 때린 후였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그동안 참았던 감정이 주체가 안 돼서 눈물로 흘러내렸다. 뺨을 맞은 오이카와의 덤덤한 표정이 이와이즈미를 더욱 자극시켰다. 그 직후. 그는 오이카와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엄청 흥분해서 그에게 쏘아붙였다. 오이카와는 묵묵히 감정을 받아주었다는 것만 기억이 났다.
“………….”
시간이 제법 흘렀다. 이와이즈미는 더는 참지 못하고 오이카와 집으로 갈 것을 결심한 찰나였다.
“하지메!!”
그의 어미니가 노크도 없이 다급하게 방으로 들어오셨다.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는 것도 잊은 채, 헐떡거리며 아들에게 전할 목적만을 말했다. 손에 꽉 지고 있던 그의 핸드폰이 추락하고 말았다.
∴ ∴ ∴
눈부신 햇살에 인상을 찡그리던 오이카와는 상체를 일으켰다. 병원이 아닌 그의 방에 있었다. 전부 꿈…. 안도의 한숨을 쉬며, 꿈이 참 현실적이었다며 잠시 감탄했다. 방문 너머로 빨리 일어나라며 소리치시는 그의 어머니의 말에 그는 이부자리 정리도 안한 채 거실로 내려갔다. 식탁에 앉아 신문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계신 아버지와, 부엌에서 한창 아침 준비로 바쁘신 그의 어머니가 계셨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들. 엄마 좀 도와줘~”
그는 어머니의 곁에서 아침 식사 준비를 도와드리며, 언젠가 그와 같이 살게 되면 나란히 식사 준비를 하지 않을까하는 상상에 더 열심히 어머니를 도와드렸다. 곧 빠르게 식사를 하고, 아버지는 회사. 그는 학교로 가기 위해 준비가 거의 끝나가던 즘이었다.
“토오루. 도시락 챙겨야지.”
어머니가 내민 1인분 도시락에 그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가 기억하는 도시락은 양이 더 많았다.
“왜 평소보다 적어요?”
“응? 평소대로잖니.”
의아해하시는 어머니의 표정에 오이카와가 오히려 놀랐다. 오이카와 어머니는 그의 도시락을 챙겨줘야 하는거 아니냐며, 늘 자신의 도시락과 함께 그와 같이 먹으라고 작은 도시락을 반찬을 따로 더 챙겨주셨기 때문이다.
“아… 그렇네요. 하하. 저. 이와쨩이 기다리니까 먼저 나가볼게요.”
“이와쨩? 새로운 여자친구니?”
대충 얼버무려 신발까지 신고 현관문을 열기 전. 어머니의 말에 오이카와는 몸이 굳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자신은 무슨 소리를 들은거지. 새로운 여자친구? 그가?? 오이카와는 천천히 뒤 돌았다.
“……무슨 소리에요. 제 소꿉친구 있잖아요. 다 아시면서 오늘따라 왜 그러세요.”
그의 어머니는 이런 농담을 하실 분도 아니셨고, 연기를 잘하시는 분도 아니셨다. 어머니는 거짓말을 못하신다. 오이카와는 어머니의 두 눈을 맞췄다. 행동은 평온하기만 하셨다.
뭔가 잘못되었어.
오이카와는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벽에 부딪혔을 때 그는 문을 황급히 열고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학교로 향하지 않았다. 그의 집으로 향해 뛰었다. 그의 집은 자신의 집에서 10분 거리로 계속 직진하다가 붉은 담벼락에서 꺾어야한다. 거기서 계속 직진하면 자신이 잘 알던 집이 나와야 할 터였다.
“……….”
오이카와는 멈춰 섰다. 분명 이 집이 맞는데, 분위기가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집과 달랐다. 그는 가까이 다가갔다.‘아오이’팻말엔 자신이 기억하던 성씨와 다른 성씨였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확인해봤지만 역시 아니었다. 길을 잘못 찾아왔나? 그의 머릿속에 의심이 쌓이기 시작했다.
“분명… 당연한 거였는데.”
이제껏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떨렸다. 머릿속이 뒤죽박죽 섞여, 지금 여기가 현실인지 꿈인지 판단력조차 흐려졌다. 기억하고 있던 가장 좋아하던 목소리가, 모습이, 감촉이. 어떠했는지 기억을 하려 애를 쓰면 쓸수록 한줌의 모래처럼 흩어졌다.
눈물이 차오르는 걸 참았다. 주저앉았던 그는 다시 일어서 근처를 빙빙 돌아다녔다. 다른 학생들이 학교를 가던. 누가 아는 척을 하건. 오이카와는 오직 그 사람의 흔적을 쫓기 시작했다. 근처를 돌던 것이 점점 범위가 넓어져, 오이카와는 옆 동네까지 걸어갔다. 정말 작은 사소한 것이라도 그의 흔적을 찾을 줄 알았건만. 그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치 세상에서 지워진 것 마냥.
“하하…하하하….”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 애가 없다면 자신도 그냥 사라지도 싶은 심정이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좌절을 느끼고 있을 때, 그의 앞에 무언가 나타났다.
“……넌 뭐야.”
오이카와는 무언 가에게 신경질을 내기 시작했다. 이제 불안도 공포도 없었다. 여긴 자기가 알고 있는 세계가 아니니까. 그의 감정에 남은 거라곤 홀로 이 세계에 남겨져, 그 사람의 존재마저 없애버린 세계에 대한 분노뿐이었다. 그의 눈앞에 있는 건 사람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즉 형태만 갖추고 있는 그림자 같은 무언 가였다. 오이카와는 그것을 노려보며 이를 드러내는 반면 그것은 꿈쩍도 안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문득 자신이 바보 같다고 느껴진 오이카와가 먼저 자리를 피했다. 그가 그것을 지나치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그를 뒤 따라오기 시작했다.
“뭐야… 쫓아오지 마 괴물.”
“………….”
오이카와 말에 그것은 멈춰 서, 이제 쫓아오지 않는 듯싶었지만. 거리가 제법 벌어졌을 때 그것은 다시 졸래졸래 오이카와를 따라왔다. 그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위협도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결국 먼저 나가떨어진 쪽은 오이카와였다. 깊은 한숨이 나왔다.
거리를 헤맸다.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도착한 곳은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이젠 목적마저 잊어, 그냥 걷고 있었다. 오랜 침묵을 깨뜨린 건 오이카와가 아니었다.
“이젠 포기할 생각이야?”
너 말할 줄도 알았어? 비아냥거릴 생각으로 뒤 돌다 말을 잃었다. 그것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녀석도 울 줄 아는 구나. 머릿속으로 인지하는 것과 다르게 마음은 그 말이 비수가 되어 꽂힌 느낌이었다. 그냥 마음이 아팠다. 당황한 그는 놀란 스스로를 진정시키는 것이 아닌, 눈앞의 그것부터 달래고 싶었다. 분명 아까까지 만해도 자신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는, 귀찮은 존재였는데. 오이카와는 그것을 향해 한발 한발 걸어갔다. 가까워질수록 울컥하는 자신이 있었다.
“왜 울어….”
끌어안을까 말까 망설임도 없이 그것을 끌어안았다. 꼭 들어맞는 따뜻한 감촉은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것과 같아서. 오이카와는 울컥한 눈물을 흘렸다. 사람형체만 있던 그것의 윤곽이 뚜렷해지고 있었다. 껴안았던 품에서 벗어나자 그가 그토록 원하던 그 사람의 흔적이 눈앞에 있었다. 오이카와가 그의 눈물을 훔쳐 닦았다. 발개진 눈가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다시 그를 품에 안았다. 그러자 그 또한 오이카와를 품에 안았다. 돌아가자.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따스한 온기는 자장가와도 같아서. 오이카와는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뜨면 분명 이와이즈미가 있을 거라 확신하면서―.
∴ ∴ ∴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오이카와 토오루의 곁을 지켰다. 그가 사고를 당한지 오늘로 일주일. 시간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지만, 자신과 오이카와의 시간은 아직까지 멈춰있었다.
그는 오이카와의 흐트러진 앞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망할 오이카와, 이제 일어날 때도 안 됐냐. 의식 없는 그에게 소심한 어리광을 부려보았다. 이젠 그를 기다릴 수 있지만.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가 할 수 있는 건, 스스로를 좀 갉아먹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사고 날. 어머니에게 사고소식을 들은 직후.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믿기 어려워서. 자신과 그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한 연극 같았기에. 이와이즈미는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저 걔랑 같이 하교했어요. 집으로 돌아갔다고요.
그래. 그의 집으로 가면, 그가 놀란 표정을 짓다가도 금방 자신을 향해 웃어줄게 분명했다. 그런 상상을 그리며 이와이즈미는 집밖으로 뛰쳐나왔다. 머릿속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기억하는 길을 따라 걸으면 금방 오이카와 집이 보였다.
집 안은 깜깜했다. 이와이즈미는 열심히 문을 두드리며 초인종을 눌렀다. 정 기다려도 나오지 않으니 번호 키를 눌러 안으로 들어가는 행동까지 저질렀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열심히 오이카와를 찾아다녔지만 집 안엔 아무도 없었다. 전화도 걸었지만 여전히 받지 않았다. 머리로는 설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이와이즈미는 그냥 눈과 귀를 닫아버렸다. 그냥 아주 질 나쁜 꿈을 꾸는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다음날 오이카와는 결석했다. 선생님도 그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하셨다. 담임선생님은 이와이즈미를 따로 불러 오이카와에 대해 물어보셨다. 이와이즈미는 그 자리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날 방과 후. 감독님과 코치께 사정을 말해 부활동을 빠지고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입원해있다는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도 그냥 멀쩡한 모습에 티비나 보고 있을 그와, 붕대를 감고 누워있는 처참한 모습에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수십 번.
그날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 병실에 가지 못했다.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를 만나러 간 것은 그로부터 이틀 뒤였다. 슬픔과 두려움에 현실을 마주하려 하지 않는 이와이즈미 모습에, 보다 못한 하나마키와 마츠카와가 나섰던 날이자, 하나마키가 난생 처음으로 울면서 이와이즈미의 뺨을 때린 날이기도 했다.
이와이즈미는 자신이 마주하고 싶지 않던 현실을 마주하고 오열하고 싶었다. 그가 이렇게 된 건 자신 탓이라고. 그의 미래도 사랑도 다 자신이 망쳤다고. 그와 사귀지 않았더라면. 그런 후회가 밀려왔지만, 어떤 사실이 그를 붙잡아주었다.
그가 끈기 있고 매우 강하다는 사실이었다.
이와이즈미의 멀어졌던 의식이 돌아왔다. 녀석의 머리를 만지다 잠들었던 모양이다. 그는 눈을 깜박여 엎드렸던 몸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잘 잤어, 이와쨩?”
이와이즈미의 행동이 멈췄다. 그가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오이카와가 자신을 향해 웃고 있었다.
“뭘 잘했다고 쳐 웃어….”
오이카와는 힘겹게 손을 뻗어 그의 뺨에 손을 댔다.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그럼에도 표정은 웃고 있었다.
“이와쨩. 나 많이 기다렸어?”
“그래. 새깨야. 기다리다가 지쳐서 다른 놈 만나려고 했다 왜.”
“하하하. 그건 곤란한데. 이와쨩은 내거잖아.”
먼저 방치한 게 누구인데… 이와쨩이 그의 품에 안겼다. 오이카와는 그를 품에 안으며 오늘의 날짜를 물었다. 그는 훌쩍이며 9일이라고 대답했다. 계획했던 깜짝 서프라이즈 생일은 물 건너갔다며 오이카와는 아쉽게 말하였다.
“대신. 오이카와씨가 생일 선물인건 어때?”
오이카와가 웃으며 장난스레 말했다.
“나쁘지 않은 선물이네.”
이와이즈미도 따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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