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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항아리

[오이이와]연애기간은 한 달下(R-15) 본문

하이큐

[오이이와]연애기간은 한 달下(R-15)

moar 2018. 7. 20. 18:21


☞ 모브이와 요소가 있습니다.


☞ 트리거 워닝 요소가 있습니다.


☞ R-15입니다.





과학이 발전한 뒤 범죄 수법도 더 악랄해진 탓인지, 거리엔 정부에게 항의하기 위해 시인하는 사람들이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그저 안타깝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어느 세상이나 돈이 있는 자들은 다 가질 수 있었고, 돈이 없는 자들은 뺏길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것은 돈이나 명예와 같은 부와 관련된 것으로 시작해, 이젠 인간의 목숨마저 쥐락펴락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도와주세요.”

 

 

집으로 돌아가던 길. 유족으로 보이는 한 여자가 그에게 전단지를 내밀며 간절한 눈빛을 보내었다. 이와이즈미는 그 눈빛이 불편해 한시라도 피하고 싶었다. 묵묵히 참고 견뎠던 지난날의 감정이 다시 되살아날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전단지를 후딱 받은 뒤, 가던 길을 빠르게 재촉했다. 전단지 내용은 보지도 않고 바로 꾸겨서 근처 쓰레기통 안으로 넣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다. 버렸던 전단지를 다시 주워들었다. 이런 건 할 짓이 못됐다. 참아왔던 감정이 또 터져, 그를 마구 흔들어놓았다. 어쩌겠는가. 그도 소중한 사람을 잃은 피해자인걸.

 

 

…….”

 

 

그 사람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된 건, 이와이즈미에게 죄책감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 다음 대학 강의를 듣기 위해 사물함에서 전공 책을 꺼낸 다음이었다. 근처에서 그 사람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때문에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최근 그 사람과 자신의 열애설이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자신을 욕하는 건 몰라도 그 사람을 욕하면 반쯤 패 죽여 놓을 거다. 그렇게 다짐하며 그는 생판 얼굴 모르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들려오는 얘긴 욕이 아니었다. 욕보다 더 욕 같은 얘기였다. 그가 브로커에게 당한 거 아니냐는 소리였다. 사람이 해도 될 소리가 있고, 못할 소리가 있지. 이가 절로 갈렸다. 그는 전공 책을 바닥에 내팽겨 친 뒤, 그들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생판 얼굴 모르는 그들은 진짜냐, 루머 아니냐는 시답잖은 토론을 하며 자기네들끼리 희희 덕 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더 화가 나서. 이와이즈미는 등을 보이고 있던 사람의 어깨를 잡아 돌린 뒤 다짜고짜 주먹부터 날렸다. 무방비했던 사람은 넘어져 고통을 호소하고, 일행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굳어있었다.

 

 

사람이 해도 될 소리가 있고, 못할 소리가 있지.”

 

 

그들의 얼굴을 머릿속에서 새겨 놓고 자리를 떴다. 강의실로 가는 길, 서러운 마음에 사실은 울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 사람과 자신의 연애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볼까 싶어, 더 당당하게 행동했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듣고 싶을 뿐이었다. 강의실 문을 열었다. 시끌벅적했던 목소리가 단숨에 죽었다. 없어진 말소리대신 시선은 이와이즈미에게 쏠렸다. 그는 당당하게 가방을 옆에 두고 자리에 앉았다. 이런 시선은 익숙해진지 오래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핸드폰으로 게임을 했다. 신경을 작은 화면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에는 미친놈들이 비아냥거리며 자신에게 성희롱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 놈들에게 주먹을 날려 기선제압 후, 발로 사정없이 밟은 뒤로는 그마저 있던 대학 친구들도 다 나가 떨어졌지만 말이다. 이제는 귀찮게 하는 미친놈들은 없었지만 그냥 한시라도 빨리 강의시간이 오길 바랐다.

 

지루했던 강의 시간이 끝난 후, 짐을 챙겨 강의실로 빠져나왔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피로를 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학교를 빠져나오니 걸음이 가벼워진 기분이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옷과 가방 정리가 아닌, 의자에 앉아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길어질수록 그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시간을 보았다. 이미 수업은 마쳤을 텐데. 아직 바쁜가? 이와이즈미는 그에게 문자를 보낸 후, 정리를 했다. 오늘 들었던 그 얘기는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시간은 흘러갔다. 1시간이 2시간이 되고, 2시간이 3시간이 되고. 그 사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연락 온 게 없는지 확인하고 또 걸어보았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은 아마 이때부터 걱정을 시작하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까지 걱정이 시작되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많이 바쁜가보다며 넘겼다. 기다리는 동안 편의점이라도 다녀올 생각에 그는 겉옷만 하나 걸친 채로 밖으로 나왔다. 벌써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하늘은 깜깜했다. 저녁 먹었을까. 무엇 하나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배고픈 것도 잊고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이라 좀 걱정되었다. 연락만 되면 편의점에 온 김에 도시락과 간식거리 좀 사서 갈 텐데.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여전히 조용하기만 했다.

 

 

빨리 옮겨.”

 

옮기고 있거든

 

아이 씨. 꼭 이런 곳에서 이 짓거리를 해야 하냐.”

 

 

컵라면 하나와 도시락을 사오고 돌아가는 길. 벽 너머로 사람 소리가 들려왔다. 캄캄한 골목에서 무언가 나쁜 짓을 꾸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벽을 타고 올라섰다. 깜깜해서 보이지 않았지만 잘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뭘 하는 거지. 곧 시야가 어둠에 익숙해진 덕분에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병을 들고 있는 사람 옆으로 누워있는 사람이 있었다. . 저놈들 브로커 놈들이구나. 상황을 깨달은 이와이즈미는 그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누워있는 사람에게 조심조심 다가갔다. 정신을 잃은 사람을 구해주겠다는 일념으로 한 행동이었다.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뭔가 안 좋은 느낌이 들었다. 그 사람의 옷이 자신의 애인이 입던 옷과 같은 옷이라서 그럴까.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더 가까이. 더 가까이 가 얼굴을 확인하려는 그때.

 

 

누구야!”

 

 

이와이즈미는 얼굴도 확인하지 못한 채 뛰었다. 붙잡힐지도 모르는 공포와, 그 사람이 자신의 연인이 아닐까라는 불안감에 휩싸여 그냥 발이 가는 곳으로 도망쳤다. 신경을 곤두서니 뒤에서 쫓아오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얼른 따돌려야하는데. 그는 근처의 틈 사이 공간 안으로 몸을 숨겼다. 심장의 소리가 크게 들렸다. 혹시나 이 심장소리 때문에 들키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그는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어디 갔어? 반드시 찾아. 일이 귀찮아지면 그 사람 또 엄청 난리칠게 뻔해. 바로 근처에서 들리는 대화에 몸이 떨렸다. 숨소리도 못내는 상황이었다. 그냥 정의감을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이렇게 어마어마한 결과를 불러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는 자신의 행동에 뒤늦게 후회를 했다. 그냥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쓰러진 사람은 자신의 연인이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놈들이 다시 흩어졌을 때. 그는 죽기 살기로 달려 겨우 집으로 도망쳐올 수 있었다. 혹시나 쫓아오지는 않을까 불도 못 켜고 현관문 렌즈를 계속 들여만 봤다. 배고픔은 이미 옛날에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쓴 뒤 동아줄 마냥 붙잡고 있던 핸드폰을 켰다. 연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고, 그 사람이 죽었을 거란 생각에 죄책감이 밀려왔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그는 울면서 누군지 모를 그 사람에게 사죄했다. 제발 받아달라고. 사죄하는 동안에도 그 사람이 자신의 연인만은 아니길 바랐다.

 

며칠간 학교에 가지 못했다. 밖으로 나가면 그 사람들이 자신을 잡으러 올까 무서워서.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연인의 연락은 여전히 없었다. 밥은 대충 있는 대로 먹었고, 안심할 수 없을 땐 티비를 틀었다. 화면 속 방송인들은 웃고 있었다. 자신도 함께 웃고 싶었지만 내용이 들어오지 않아 그냥 틀어두기만 했다. 쓰러져있던 그 사람이 잊혀 지질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자기 정당화를 하며 잊고 싶었지만. 무의식중에 떠올라 그를 괴롭혔다. 그래서 잠도 제대로 못 잤다. 푹 자질 못하니 얼굴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몸을 웅크려 폐인같이 지낸 것이 며칠째 되던 날.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드리는 소리가 다급했다. 그게 도리어 두려워진 이와이즈미는 귀를 막고 없는 척을 했다.

 

 

! 이와이즈미!”

 

집에 있는 거 다 알아.”

 

 

밖에서 이와이즈미를 부르는 목소리는 그의 유일한 몇 안 되는 친구. 마츠카와와 하나마키였다. 좀 안심이 된 그는 현관문을 열었다. 그들의 얼굴이 보였다. 두 사람은 깜짝 놀란 얼굴을 짓더니 하나마키는 눈물을 터뜨렸다. 그를 끌어안고 야단치기 시작했다. , 바보야. , 바보야. 자신의 등을 때리는 게 아팠지만 그 품이 안락해서 떨어질 수 없었다. 하나마키와 마츠카와는 이와이즈미의 집 안으로 들어왔다. 폐인 생활을 해도 며칠 밖에 안 되기도 하고. 또 그가 막 어지르는 사람은 아닌지라. 집안은 깨끗한 편이었다. 그들은 마트에서 장을 보고 오는 길이었는지, 마츠카와의 손엔 마트봉투가 들려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이와이즈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 상태는 어떻게 알았냐? , 다른 학교잖아.”

 

 

그 두 사람은 이와이즈미와 함께 3년간 고등학교 생활을 같이 해온 동창으로, 이와이즈미와는 다른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그가 동성과 사귄다는 열애설이 퍼졌을 때도 꿋꿋하게 곁에 남아준 진짜 몇 안 되는 친구였다. 그들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나마키와 마츠카와는 서로의 눈치만 보았다. 일단 밥부터 먹자. 하나마키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식탁위에 간단한 음식을 내놓았다. 생각해보면 하나마키가 요리를, 마츠카와가 간단하게 주변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이 여기가 자신의 집인가 하는 의문을 들게 할 정도로 자연스러워서. 이와이즈미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미안함과 고마움 마음에 나온 행동이었다. 그들은 그걸 알기에 별말 없이 넘어갔지만. 그들의 표정은 여전히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나마키와 마츠카와는 그 뒤로도 이와이즈미의 집을 방문했다. 그들이 사온 음식을 이와이즈미와 하나마키가 요리를 해주고 마츠카와는 그들을 도와주거나, 주변을 청소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생활도 점차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죄책감이 여전히 그를 누르고 있었다. 연인과 연락이 되지 않은 것이 그 이유였다. 시간은 여전히 그 날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몇 날 며칠째 기다려도 대답 없는 소식에 기다리다 지친 이와이즈미는 간만에 학교를 방문했다. 혹여 자신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봐 모자를 꾹 눌러썼다. 이와이즈미는 경영학과를 방문했다. 그 사람이 재학 중인 과였다. 막상 건물 안으로 들어왔지만 강의실을 몰라 조교 실을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완전 안됐다. 그 선배.”

 

그러게. 걔도 그거 때문에 학교 안 나오는 거 아니야?”

 

그렇지 않을까? 하필이면 브로커에게 당하다니.”

 

몇몇은 장례식 출석한다고 하던데.”

 

 

숨이 멈췄다. 자판기 앞에서 음료를 뽑으며 말하는 여학생과 남학생이 말하는 중심인물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손이 떨렸다. 겨우 벗어났던 죄책감이 더 큰 파도가 되어 그를 덮쳤다. 빠져나올 수 없었다. 이와이즈미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놓치면 이젠 그 사람과 관련된 단서는 아마 영영 얻을 수 없을 테니까. 어떤 표정으로 그들에게 무슨 말을 꺼냈는지 모르겠다. 기억나는 건 그들의 경악어린 표정과 어느새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장례식장 위치와 날짜가 적힌 종이였다.

 

그는 장례식장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눈물을 훔치며 들어가는 사람들. 웃음기 하나 없이 덤덤한 표정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그 사람을 구하지 못했기에. 소중한 사람들의 슬픔 또한 자신이 만든 것 같아서. 고개가 숙여졌다. 이와이즈미도 마지막으로 그를 만나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싶었다. 그것이 용서받을 일이 아닌 걸 알면서도 말이다. 오기 전에 눈물이 났으니, 이곳에 오면 엄청 울 줄 알았던 예상과는 달리. 불행인지, 다행인지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이와이즈미는 다행이라 생각하며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손끝이 차갑고, 마음은 공허했다. 그리고 한 가지 결심했다. 죽어서 사죄를 하기로 말이다. 물론 그냥 죽을 생각은 없지만.

 

이와이즈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학교를 자퇴하는 것이었다. 조교도 교수도, 성실했던 그가 지금은 잠깐 방황하는 것으로만 생각해 붙잡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당일 날 자퇴처리가 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는 꼬깃하게 접어둔 종이를 꺼내 볼펜으로 선을 그었다. 종이엔 죽기 전에 정리해야 할 목록들이 쓰여 있었다. 많지 않은 몇 가지 중 이제 한 가지를 해결한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이지만, 미련이 조금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이와이즈미. 괜찮냐?”

 

뭐가?”

 

. 아니, 그게.”

 

너 계속 무단결석하고 있잖아.”

 

 

오늘도 찾아온 두 사람과 작은 밥상 앞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있을 때였다. 하나마키가 이와이즈미의 눈치를 살피다 결국 입을 열었다. 괜찮냐고 묻는 질문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냥 모른 척했다. 하나마키가 안절부절하자 옆에 있던 마츠카와에게 눈치를 줬는지, 마츠카와가 대신 대답하였다. 괜찮아. 그 말은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하고 입안을 맴돌았다. 그는 피식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자신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 그들이 괘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심정이 이해안가는 것도 아닌지라. 그냥. 그냥 얼마 남지 않은 그들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싶었다.

 

며칠 뒤. 집주인에게 방을 뺀다고 말했다. 한 달도 안남은 상태에서 말해, 안된다고 할까 걱정한 것과 달리. 그녀는 알았다며 수수료를 빼고 돌려주겠다는 말을 했다. 대화를 마친 뒤 돌아온 그는 조금씩 짐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전당포나 인터넷 중고 사이트에 싼 가격으로 물건을 조금씩 처분했다. 안 그래도 휑한 집안을 더 휑하게 만든다며 하나마키에게 엄청 혼났지만 말이다. 그럴 때마다 이와이즈미는 그냥 별 필요가 없다고 둘러대기만 했다. 가장 소중한 이들에게 끝까지 비밀로 남기고 싶었다. 그게 얼마나 잔인한 짓인지 알면서도 말이다.

 

물건을 싸게 내놓은 덕에 집안에 있던 물건들은 차례차례 다른 주인의 곁으로 갔다. 당분간 살아가기 위한 필수품 뺀 나머지 물건을 모두 팔았을 때, 하나마키와 마츠카와 한창 바쁠 시기라 다행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겠구나. 이 집에 있는 것도 오늘로 마지막이라,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는 휑해진 집안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집에 있었던 그 사람과 그 둘과의 추억을 간직한 채, 그는 문을 닫았다.

 

 

이 사람이 어느 조직에 인신매매 당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찾아간 곳은 흥신소였다. 낡아빠진 건물 안으로는 온갖 이상한 전단지가 바닥에 뿌려져 있었다. 심상치 않은 느낌에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문을 열었다. 코끝으로 퍼지는 담배냄새에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정장을 곱게 차려입은 남자가 이와이즈미에게 사장님호칭을 쓰며 소파로 안내했다. 소파에 앉은 이와이즈미는 가방에서 1장의 사진을 꺼내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남자는 건네받은 사진 속 연인을 유심히 바라보며, 그에게 눈짓했다. 의뢰를 얘기해달라는 눈짓이었다.

 

 

그 사람은 영혼 브로커에게 인신매매 당했어요.”

 

…….”

 

죽인 사람을 알고 싶어요.”

 

 

목이 삐쩍 말라가, 옆에 놓여있던 생수로 입안을 축였다. 그 사람을 죽인 사람을 찾아주세요. 아주 간단한 말인데, 당시의 죄책감과 그리움이 뒤섞여 순간 그를 흔들어 놓는다.

 

 

흐음.”

 

 

남자는 그에게 몇 가지의 질문을 던졌다. 혹시 아픈 곳이 있는지, 시한부였는지. 그가 자살을 생각했는지.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저었다. 남자는 진지하게 고민하더니, 이와이즈미의 눈치를 봤다. 너무 이 일에 깊게 관여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게 남자의 말이었다. 아마 복수를 염려하는 차원에서 하는 말이겠지. 하지만 그의 목표는 복수가 아닌 죽음이다. 상관없는 일이었다. 덤덤한 표정으로 괜찮다고 말하는 그의 말에 남자는 입을 열었다.

 

 

안 알아봐도 딱 답이 나와. 오이카와 토오루. 그 사람 말고는 생사람의 수명을 매매하는 사람은 없어.”

 

 

그 사람은 어디에서 만날 수 있죠?”

 

 

? 당신 제정신이야? 그 사람 만나서 뭐하려고. 애인 죽였다고 살려내라고 깽판이라도 치려고?”

 

 

남자는 안쪽 주머니에 들어있던 담뱃갑을 꺼내 들고는, 이와이즈미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이와이즈미는 남자의 말을 그냥 덤덤하게 흘러 넘겼다. 사람의 목숨을 쉽게 뺏는 사람에게 제대로 된 감정사고따위 있을 리 없을 테니까. 어쨌든 최후엔 그의 손에서 생을 끝내고, 죽음으로 사죄를 하는 것만이 그의 목표였으니까. 남자는 이와이즈미를 향해 바보냐면서 비웃었지만, 그럼에도 고객이니 오이카와 토오루의 위장 회사 위치를 알려주었다. 이와이즈미는 방을 나올 때 받았던 돈의 절반 이상을 남자에게 지불한 뒤 흥신소를 나왔다. 사장이 나오기 전 그에게 뭐라 충고를 했던 것 같지만 딱히 기억나진 않았다.

 

 

흥신소에서 알려준 위장 회사를 제 발로 찾아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흥신소와는 비교도 못할 정도로 깨끗한 실내와,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미남인 남자가 있었다. 본능적으로 저 사람이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걸 알았다. 그에게로 다가갔다. 매혹적인 눈동자는 먹이를 노리는 눈빛이었고, 당장이라도 자신을 씹어 먹을 것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제 생명을 드릴게요.”

 

 

자신의 말을 들은 오이카와의 표정이 경계심으로 변했지만 그 속엔 호기심 또한 엿보여 그 속을 강제로 비집었다. 죽어야한다는 목적만을 위해서.

 

 

"저와 한 달간 사귀어주세요. 사랑해달라고 하지 않아요. 그냥 사귀어주세요.“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오이카와의 손에 죽어야했다. 그러나 그냥 죽을 순 없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벌을 내렸다. 자신을 망가뜨리고 끝에는 죽임을 당해야 그에게 사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주먹 쥐었다. 오이카와가 기각한다면 자신의 계획은 다 틀어져버린다. 다른 사람은 안 된다.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의 손에 인생을 끝내야만 했다.

 

 

이 오이카와씨 인기가 많아서 곤란하다니까~”

 

…….”

 

그럼 서약서부터 작성해볼까?”

 

 

 

그는 오이카와가 내민 서류에 망설임 없이 지장을 찍었다. 사랑해서 연인이 되는 것이 아닌, 서로의 목적을 위해 연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커튼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어와 이와이즈미의 볼에 내려앉았다. 그의 얼굴엔 사라지지 않은 눈물자국과 홍조가 전날 밤의 고생을 나타냈다. 평온했던 그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하더니 곧 눈꺼풀이 뜨였다. 그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흐릿했던 시야가 아까보단 뚜렷해보였다. 곧 상체를 일으켰다. 평소와 다름없이 일어나려다 그는 허리에서 전해지는 찌릿한 통증에 신음을 뱉어냈다. 그 순간의 찰나에 지난밤의 기억이 스쳐갔다.

 

 

…….”

 

 

더블침대 위에 홀로 덩그러니 있는 그는 비어있는 옆자리에 손을 갖다 댔다. 온기는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오이카와는 이곳에 없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려 할 때 덜컥 문이 열렸다. 갑작스런 오이카와의 등장에 깜짝 놀란, 이와이즈미가 그의 손짓에 잠시 망설였다. 이미 다 본 사이라도 차람 그냥 갈 수 없어서 이불로 몸을 대충 가린 뒤 그에게 쭈뼛쭈뼛 다가갔다. 한발한발 움직일 때마다 허리에서 찌르는 고통에 이를 악물어야했다. 오이카와의 비웃음에 이와이즈미의 고개를 숙였다. 고통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오이카와를 보지 않아도 그 시선은 진득하게 느껴졌기에, 자신을 위아래로 품평하듯 보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미 다 본 사이인데~ 그렇게 창피해?”

……….”

 

 

다 알면서도 묻는 게 짜증났다.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아마 주먹을 날렸을 테지만 무슨 꼴을 당할지 몰라 얌전히 대답했다. 오이카와는 기다렸다는 듯.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건넸다. 왜 자신에게 뜬금없이 핸드폰을 주는 거지? 그는 오이카와의 얼굴을 살펴봤다. 안 받아? 오이카와의 퉁명스런 목소리에 그제야 핸드폰을 받아드렸다. 무슨 의도로 주는지 몰라, 그의 얼굴을 슬쩍 보았다. 그가 바란 것은 대답이었지만 오이카와의 입에선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용건이 있으면 그 폰으로 연락해. 그리고 어디 나간다면 반드시 보고하고. 8시까지는 무조건 이 침실로 돌아와 있어야 해.”

 

.”

 

 

혼자 남은 방. 이와이즈미의 시선은 자연스레 휴드폰으로 향했다. 기스 하나 없는 새 휴대폰 액정엔 자신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너덜해진 헌 것과 같은 모습의 자신에게 이질감이 들어 눈을 돌렸다.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근처에 놓아두고 화장실로 향했다.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팠고, 다리 사이로 말라비틀어진 느낌은 불쾌했다. 마지막까지 오이카와 토오루가 상냥하지 않아서 다행이라 여겼다. 만약 그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상냥함을 보였다면 정말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방에서 나와서야, 자신이 낯선 곳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제는 분명 그의 회사에 있었는데. 기억을 떠올리려다 그만뒀다. 굳이 그와 한 행위를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힘겹게 몸을 씻고 돌아와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시간은 벌써 10시가 조금 넘어있었다. 앞으로 약 10시간. 오이카와가 돌아오기까지 남은 시간. 이곳에서 기다릴 것인가, 나갈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서 이와이즈미는 잠깐의 고민 끝에 나가는 것을 택했다.

 

용건이 있으면 그 폰으로 연락해. 그리고 어디 나간다면 반드시 보고하고. 8시까지는 무조건 이 침실로 돌아와 있어야 해.’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준 휴대폰을 쳐다봤다. 아까 들었던 오이카와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걸 챙겨 나가는 게 바람직하겠지만 굳이 이런 점까지 그의 말을 들을 생각은 없었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연애를 하는 것이지,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만지고 싶지 않았다. 이걸 챙겨나가는 순간 마음까지 굴복하게 될 테니까. 그냥 원래 쓰던 휴대폰을 챙겨가고 싶어, 방을 샅샅이 뒤졌지만 자신의 짐은 없었다. 아마 오이카와의 회사에 있거나 혹은 버렸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와이즈미는 아무것도 챙기지 않고, 모자만 쓴 채 나왔다. 시간이 제법 남아서 그 안에는 돌아가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가 향한 곳은 그의 연인이 잠들어있는 곳이었다. 자신이 그를 죽이게 했다는 걸 안다면 무슨 염치로 여길 오겠냐고 묻겠지만. 그는 죽은 연인의 묘비를 보며 목적을 가슴에 세기기 위해 찾았을 뿐이다. 그리고 이곳에 있으면 마츠카와와 하나마키를 안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

 

 

묘비 앞엔 싱싱한 꽃이 놓여있었다. 그의 지인이나 친구 혹은 가족이 이곳에 머물다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다. 정작 연인이었던 자신은 빈손인 것도 모자라, 그를 만나기 위해 온 게 아닌 다짐을 하러 왔으니.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해서 머리를 긁적였다. 다음에 올 땐 꽃이라도 사와야겠다고 머릿속에 새겨 뒀다. 그 꽃을 받고 연인이 좋아해 줄 거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다. 곧 그의 발걸음이 무덤에서 점점 멀어졌다. 죄의식이 그의 발밑의 그림자가 되어 따라붙는 것만 같았다.

 

그는 펜트 하우스로 돌아왔다. 거실 바닥에 앉아 몸을 최대한 웅크려 눈을 감았다. 깊은 어둠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주 깊고 끈적한 어둠속으로.

 

하지메.’

 

바다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연인이 웃고 있었다. 그와 자신은 차 안에 앉아있었고, 창밖으로는 푸른 바다가 보였다. 그들은 차에서 내려 모래사장 위를 걸었다. 손을 꼭 잡고서. 맞잡은 손만 바라보던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들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카락과 넓은 등이 그를 안심시켰다. 그가 연인의 이름을 불렀다.

 

 

――.”

 

 

?

당황한 나머지 걸음을 멈추었다. 앞서 걷던 그도 함께 멈췄다. 다시 이름을 불렀지만 목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름다웠던 풍경이 점점 탁해졌다. 맞잡은 손을 당겨봐도 연인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곧 고통이 느껴졌다. 연인이 자신의 손을 굉장히 세게 붙잡고 있었다. 아프다고 호소하지만 악력은 점점 강해졌다. 연인이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굉장히 기괴했다. 무서움에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칠 수 없었다. 몸을 덜덜 떨었다. 상냥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옷도 그가 납치당했을 때 입었던 옷으로 변해있었다. 원망의 눈빛이 이와이즈미를 노려보고 있었다.

 

 

! 허억.”

 

 

정신을 차리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꿈이었다. 꿈이지만그 표정이 너무 선명해서, 진짜 그 사람을 만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잊을 수 없어서.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이제 곧 오이카와가 올 시간이 다되어갔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해보니 오늘 먹은 것도 없었다. 뭐라도 사와서 다른 일을 해야 했다. 그래야 진정이 될 테니까. 괜찮아. 원한다면 지옥의 끝이라도 갈게.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곳이 있다면, 그걸로 그 사람이 편안히 잠들 수 있다면. 그는 밖으로 나와 마트로 향했다. 집으로 오기 전 봐둬서 위치는 대강 알고 있었다. 자켓 안에 약간의 현금이 있어서 그걸로 되는 데로 살 생각이었다.

 

 

어디 다녀와?”

 

저기그러니까.”

 

 

마트에서 뭘 샀는지도 모르겠다. 보이는 데로 몇 개만 주워 담고 바로 계산을 끝냈다. 집으로 돌아오니 깜깜했다. 그래서 불을 켰을 뿐인데. 차가운 눈빛이 자신을 맞이했다. 머릿속은 이미 과부하 상태였다. 그 눈빛이 아까 꿨던 꿈을 연상시키는 것만 같았다. 대답해야하지만 말이 꼬여 나오지 않았다. 오이카와가 다가왔다. 뒷걸음질치도 못한 채 붙잡혀 끌려갔다.

 

오이카와와 연애를 시작한지 벌써 일주일이 되 가던 날. 이와이즈미의 몸에 붙은 키스마크는 흉터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 흉터는 나날이 늘어만 가, 그는 흉터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약간 따끔거렸다. 요즘 들어 그와의 섹스를 자신 또한 즐기는 것 같아 불안했다. 그와의 섹스는 스스로에 대한 벌이지, 절대 쾌락이 되어선 안됐다. 알고 있는데. 알고 있는데. 오이카와 토오루에게 마음을 주게 될까봐 두려웠다. 죽기위한 방법이 잘못된 거 같아 의구심이 들었다. 후퇴할 곳은 없었다. 앞만 바라보고 계속 걸어 나가야 했다.

 

 

넌 왜 나랑 사귀는 거야?”

 

좋아하니까요.”

 

 

일주일이 되던 날. 나란히 티브이를 보던 중, 오이카와가 정적을 깨뜨렸다. 그 질문 하나로 앞으로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그래. 나는 당신을 좋아한다. 나를 죽여줄 사람이라서. 그 사람도 당신 손에 죽었다. 나 또한 당신의 손에 죽으면. 그 사람을 만나 사죄할 수 있을 테니까. 속마음을 들킬까 오이카와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도 모른 척 고개를 티브이에 고정시켰다.

 

 

무드 없네.”

 

 

궁시런거린 소리에 순간 시선이 돌아가 버렸다. 그는 자신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곧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성큼성큼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순간 그의 귀 끝이 달아오른 걸 보아도 아닌 척 넘겼다. 아직까진 목적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 나랑 저녁 먹을 거니까, 미리 준비해 놔.”

 

 

2주차가 시작 된지 얼마 안 된 날이었다. 그동안 한 번도 같이 밥을 먹자고 한 적이 없었기에 오이카와의 발언은 그를 놀라 게 만들었다. 권유가 아닌 명령형이라 어차피 자신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오이카와가 피식 웃었다. 그동안의 웃음과 다른 다정한 표정이었다. ,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이와이즈미는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을 때, 오이카와는 다시 표정을 고치고 나가버렸다.

 

 

, 뭐 먹는지 물어봐야하는데.”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 준 휴대폰으로 그에게 전화를 할까 싶었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미쳤지. 이 생활에 이제 좀 적응된다고 목적을 잊으면 안됐다. 오이카와 토오루가 주는 것은 무조건 다 꺼림칙해야했다. 사실 이 생활에도 적응이 되면 안됐다. 그는 자신의 볼을 세게 내리쳤다. 욱신, 아파왔다. 애초에 뭘 먹던지 그 오이카와 토오루다. 서민들이 먹을 음식을 먹을 그가 아니다. 입고가야 할 옷도 정해져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정장은 없었다. 기성용 정장을 사기엔 돈도 없었다. 그냥 가지고 있는 옷을 입고가면 오이카와가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른다. 그는 고민하는 것도 잠시, 우선 옷장 문을 열었다. 딱 봐도 고급스러운 정장이 줄줄이 걸려있었다. 그 중에서 고르고 골라 가장 안 비싸 보이는 옷을 입었다. 다행이도 기성복이라 사이즈는 맞았다. 이 옷을 입었을 때 그에게 안 들키길 바라며 이와이즈미는 옷을 잘 개어 침대 위에 올려두었다. 그는 다시 옷을 갈아입고 나갈 채비를 한 뒤, 밖으로 나갔다. 가는 곳은 언제나 정해져있었다.

 

 

나왔어.”

 

오셨어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걸어갔지만, 혹시나 들킬까싶은 마음에 몸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오이카와는 어째서인지 넋이 나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옷차림을 확인했다.

 

 

오이카와씨?”

 

…….”

오이카와씨?”

 

.”

 

 

불러도 계속 넋이 나가있기에, 거리를 좁혔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땐 꽤나 당황하더니 뒤돌아 걸어갔다. 그냥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보다, 라며 가볍게 넘기고 뒤따라갔다. 차에 올라탄 뒤부터는 말이 없었다. 오이카와가 힐끔힐끔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이즈미는 그 시선을 무시했다. 안 그래도 최근 휘둘리고 있는데 이 이상으로 휘둘려지고 싶지 않았다.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도착할 때까지 둘 사이에의 정적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멀리서 발렛파킹 직원이 그들에게 인사를 하며 서비스가 필요 하냐 여쭤보았다. 오이카와는 시동을 끈 뒤, 직원에게 키를 넘겨주고 차에서 내렸다. 이와이즈미도 뒤늦게 따라 내려, 그의 뒤를 뒤쫓았다.

 

 

어서오십시오. 오이카와님.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웨이트리스가 오이카와와 자신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다. 순간 당황한 이와이즈미는 따라 고개를 숙이다, 부끄러워진 마음에 후다닥 오이카와의 뒤를 따랐다. 따라간 곳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혹시 오이카와가 봤을까 싶어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다.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 먼저 눈을 피한 건 이와이즈미였다. 왜 이리 신경이 쓰일까. 그는 다시 오이카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는 이미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59층엔 아름다운 야경과 캔들 홀더가 은은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테이블엔 몇 송이의 꽃이 장식되어 더욱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웨이트리스는 그 말을 남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오이카와가 먼저 걸어가 세팅을 둘러보고 있을 때, 자신은 뭘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오이카와가 자신에게 다가왔다. 그의 왼손엔 허리를 오른손엔 온기가 느껴졌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어려웠다. 초반에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했는데, 어디서부터 삐걱거린 걸까. 상냥하게 대하지마. 나를 소중하게 대하지마. 이런 식으로 대해주지 않았으면 해도, 마음 한구석으로 이러고 있는 게 좋아서. 이와이즈미는 그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리에 앉아.”

 

……….”

 

 

오이카와의 에스코트에 이와이즈미는 눈치를 한번 살피고는, 자리에 앉았다. 오이카와도 맞은편에 앉았다. 얼마 후. 소믈리에가 그들 앞에 나타나,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을 잔에 따라주며 설명을 하였다. 오이카와는 글라스에 담겨진 와인의 색과 향기 그리고 맛을 천천히 음미하는 모습을 보며, 그 역시 오이카와를 따라 맛을 음미했다. 역시 술은 자신과 맞지 않았다. 그는 술보다는 달달한 음료를 더 좋아했다. 그래서 그의 연인이 생긴 것과 따로 논다고 자주 놀리곤 했었다. 맛이 괜찮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게 괜찮은 맛인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벌써부터 몸이 조금 후끈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정말 귀엽다. 이와이즈미.”

 

.”

 

, 왜 그래?”

 

처음이네요. 당신이 내 이름을 부르는 거.”

 

 

그는 그동안 자신을 이름으로 부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름 따위 옛날에 잊혀 진 줄 알았다. 기억하고 있어서 놀랍기도 하고, 나쁘지도 않고. 오이카와의 기억력에 감탄하고 있을 때. 웨이트리스가 그들 앞에 고급스럽게 플레이팅이 된 스테이크를 놓았다. 그는 스테이크를 보았다. 이 고깃덩이를 하나를 먹으려면 얼만큼 일을 해야 할까. 아마 평생 살면서 먹을 수 없겠지. 시선은 맞은편의 오이카와를 향했다.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해, 이미 먹고 있었다.

 

 

맛없어?”

 

? 아뇨.”

 

 

이와이즈미는 그제야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생각보다 무거웠다. 스테이크를 썰어 입에 넣었다. 맛있어요. 자신의 말에 오이카와가 웃었다. 마치 오이카와와 자신이 진짜 연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게 기분이 이상하면서도 싫지 않아서.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숙였다. 야경의 밤이 깊어져갔다.

 

그 뒤로도 오이카와는 자신을 데리고 놀러다녔다. 영화를 보고, 드라이브를 하고, 저녁도 먹고. 그가 가끔 시간이 빌 때는 점심식사도 같이했다. 그의 행동에 의문이 들면서도 이 관계가 싫지 않아서. 이게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눈을 감았다. 오이카와도 이와이즈미도 점점 적응해갔다. 오이카와는 그의 이름을 부르는 횟수가 점차 늘었고, 그가 오이카와에게 존댓말을 쓰는 횟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요즘은 죽은 연인의 묘비에 들리는 횟수마저 줄어갔다. 그렇게 목적에 눈을 돌린 채, 행복에 젖은 2주차가 끝나갈 무렵. 그가 한창 저녁을 준비를 하던 때였다.

 

 

이와이즈미.”

 

?”

 

너무 길어! 하지메, 라고 불러도 돼?”

 

……….”

 

 

칼질을 멈췄다. 오이카와의 한마디의 말에 목적을 직시해버렸다. 그리고 인정했다. 자신의 계획은 처음부터 잘못 설계되었다고. 차라리 그때 바로 죽여 달라고 했다면. 그는 얼굴에 쓴웃음이 피었다. 오이카와는 허둥대더니, 이와쨩이라도 불러도 돼나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반문했다. 당황감이 묻어있던 오이카와의 표정이 풀린다. 자신도 웃는다. 어차피 잘못 설계되었다면. 아주 조금만 더 눈을 돌려도 되지 않을까. 이젠 사죄하는 것도 못하겠구나. 그는 속으로 삼켰다. 언제까지나 그 사람이 세상의 중심일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의 세상엔 오이카와가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다.

 

3주차가 다가왔다. 오이카와는 여전히 아침이 되면 회사에 나갔고, 자신은 손을 흔들며 그를 배웅시킨다. 그가 떠나면 이와이즈미는 혼자 남는다. 그는 서랍에서 고질라 펜던트를 만지작거렸다. 저번에 오이카와가 선물이라고 건네준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많이 달라졌다. 난폭한 섹스도 하지 않고, 자신을 데리고 놀러 나가는 것도 모자라 선물까지 사줬다. 겉으로 보기엔 평화롭지만 그럴수록 그의 연인이 목을 졸라왔다. 자신의 그림자엔 여전히 질척한 죄책감이 있었고, 자신이 눈을 돌려도 그것은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마치 절대 도망칠 수 없다고 말하듯이.

 

그래서 그는 종이에 글을 썼다. 티브이에서 슬프고 괴로울 때 그것을 글로 표현하면 기분이 좀 나아진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막상 글을 쓰려니 어디서부터 써야할지 몰라 망설였다. 일기도 초등학생이후론 써본 적이 없었다. 그는 볼펜으로 머리를 긁적이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기 시작했다. 내용은 뒤죽박죽이지만 상관없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었으니까. 이와이즈미는 글을 쓰면서, 글을 쓰는 사람들을 존경했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걸 끄집어내기 위해 글을 써도 어떤 문장에 따라 뉘앙스와 분위기가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이다. 집중을 하니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가, 벌써 오이카와가 올 시간이 다 되었다.

 

 

이와쨩 있잖아서약서 파기하면 안 될까?”

 

……….”

 

이와쨩?”

 

갑자기 왜?”

 

 

움직이던 손길을 멈췄다. 가장 직시하고 싶지 않은 판도라의 상자를 오이카와가 열어버렸다. 표정관리가 되지 않아, 고개를 숙였다. 오이카와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가 대답하지 않아도 답을 예상되었다. 그래서 대답을 듣고 싶지 않았다. 들으면 이젠 정말 돌아올 수 없게 된다. 그게 무서워서. 그 사람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 악몽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림자가 스멀스멀 자신의 몸 위로 올라온다.

 

나는 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이제 뭐가 정답인지도 모르겠어.

 

다 무서워. 그냥 도망치고 싶어.

 

 

이와쨩.”

 

 

오이카와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이와쨩 말이야. 왜 내게 찾아왔던 거야?”

 

 

이젠 모르겠어.

 

 

왜 죽고 싶었던 거야?”

 

 

나는, .

 

그는 오이카와에게 달려가 그를 밀어 넘어뜨렸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 입을 맞춰 혀를 넣었다. 그의 혀와 치아와 입천장까지. 구석구석 핥았다. 오이카와는 그를 밀어냈지만 그럴수록 그는 오이카와에게 달라붙었다. 곧 입술이 떨어졌다.

 

 

오이카와. 하자.”

 

 

거칠게 안겨져, 그냥 다 잊고 싶었다. 오이카와도, 그 사람도.

 

 

엉망진창으로 하자.”

 

싫어.”

 

.”

 

이와쨩이 다치는 거 싫어.”

 

이제 와서. 이제 와서! 난폭하게 안을 거 다 안아줘 놓고, ? 내가 다치는 게 싫다고?”

 

 

분함이 북받쳐 올랐다. 그의 가슴을 내려쳤다. 그는 끝까지 자신이 도망치는 것을 봐주지 않았다. 자신을 안아주는 그 손이 상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정해서. 이와이즈미는 자신의 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오이카와 토오루를 좋아한다는 것을. 처음부터 선택지는 하나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선택지는 오이카와고, 이미 오이카와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부정하고 싶었다. 그 사람의 얼굴이 아른거렸으니까. 내가 이 사람을 선택하면 그 사람을 두 번 죽이는 것이 되어버리니까. 아이처럼 서럽게 울었다. 아주 서럽게.

 

 

사랑해, 이와쨩.”

 

………나도.”

 

 

그동안의 행위와 확연히 달랐다. 정말 이 사람이 난폭한 행위를 했을까 싶을 정도로 부드럽게 리드했다.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닌. 사랑받는 느낌에, 마음의 상처가 여물어가는 느낌이었다. 사랑해. 사랑해 이와쨩. 그 목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편안했다.

 

 

오이카와. 서약. 없었던 걸로 하자.”

 

 

행위가 끝난 뒤의 밤. 이와이즈미는 입을 열었다. 이제 괜찮았다. 그를 선택할 수 있었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끌어안았다.

 

 

. 고마워. 내가 더 잘해줄게. 이와쨩만 바라 볼 거야. 너만 있으면 돼. 너만. 오직 너만.”

 

그래. 나도.”

 

 

그는 매일 오이카와의 애정을 느꼈다. 오이카와가 웃으면 이와이즈미도 따라 웃었다. 이제 서약서만 해결된다면, 그와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전 연인에게 사죄가 아닌, 살면서 속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직 자신의 그림자엔 죄책감이 남아있었다. 그래도 전처럼 무섭지는 않았다. 이젠 오이카와가 있으니까.

오이카와는 기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서약서를 없애기 위한 전문가를 알고 있다며 그에게 가는 길이었다. 자신도 따라가고 싶었지만 위험해질 수 있으니 집에 있어달라고 부탁받았다. 어쩔 수 없네. 조심해서 다녀와. 오늘도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배웅했다. 오이카와가 떠난 뒤, 그는 자신이 전에 종이를 찢어버렸다. 오이카와가 볼지 모를 이유도 있었지만, 이젠 과거에 묶여있는 것이 아닌. 앞을 바라보며 속죄를 하고 싶었다.

 

 

왔냐.”

 

. 다녀왔어.”

 

 

오이카와의 표정을 보고 어떤 답을 들었는지 예상한 그는 별말 없이 다시 부엌으로 돌아갔다. 오이카와가 알아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느껴졌으니까. 오이카와는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자신은 요리를 마무리했다. 식탁위에 음식이 하나, 둘 늘어날수록 오이카와의 표정은 여전히 좋아 보이지 않았다. 자신 쪽에서 그냥 말을 걸어볼까 싶었지만. 그냥 오이카와 쪽에서 말을 걸어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말을 꺼내기는커녕 갑자기 갈등이 해소된 것인지 표정이 괜찮아졌다. 그는 섭섭함을 느꼈지만 모른 척 했다.

 

 

미안. 오늘도 늦을 거 같아. 피곤하면 먼저 자.”

 

그래.”

 

 

오이카와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계속 늦어졌다. 왜 늦는지는 알고 있었다. 서약서를 해지하지 못해, 어떻게든 해지하기 위해서겠지. 하지만 기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오이카와의 노력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이와이즈미가 걱정하는 건 오이카와가 계속 해지하는 것에만 집중하다가 결국 해지도 못하고, 더 많은 추억을 만들지도 못한 채 끝나버리는 것. 그런 결말이 찾아올까봐 슬펐다. 한편으로는 그냥. 이렇게 찾아갔는데도 안 된다면. 포기하고 자신과 있어줬으면 했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납득하지 못 하겠지. 그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오늘은 성공하길 바라며 기도하는 것 말고는 없었다. 어느덧 시간은 계속 흘러 3주의 끝을 맞이했다.

 

 

오늘 출근 안하냐?”

 

좋은 아침 이와쨩~. 오늘부터 휴가 냈어.”

 

 

잠에서 깬 아침. 뭔가 맛있는 냄새가 풍겨와 거실로 나가니, 오이카와가 아침을 만들고 있었다. 그동안 아침을 만드는 사람은 자신이었는데. 앞치마까지 두르고 요리를 하고 있으니 솔직히 낯설었다. 오이카와의 입에서 나온 휴가가 어떤 뜻인지 대강 알 거 같아 고개만 끄덕였다. 식탁 의자에 앉아 그의 요리솜씨가 얼 만큼 최악일지 살짝 기대해보았다. 그가 건넨 접시엔 제법 예쁘게 담긴 토스트와 계란프라이가 올려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오이카와가 자신의 요리솜씨가 나쁘지 않다면서 망언을 하여 걷어 차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 이제부터라도. 지금부터라도 지난 일주일의 몫까지 추억을 가득 만들자고.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새로운 부분을 많이 알게 되었다. 특히 그가 엄청 귀찮게 한다는 점이었다. 방에 들어갈 때도, 요리를 할 때도, 특히 화장실에 갈 때도. 어디든지 따라 들어가려는 탓에 이와이즈미는 시도 때도 없이 오이카와를 때리기 바빴던 것 같다. 계속 맞으면서도 학습이 안 되는 건지, 상관이 없는 건지. 계속 쫓아다녀 귀찮게 굴었다.

 

또 오이카와 토오루는 승부욕이 강했다. 이와이즈미는 하나마키와 마츠카와와 함께 게임을 많이 해봐서 대체적으로 게임을 잘하는 편이었다. 오이카와는 카드게임 빼고는, 티브이 화면을 보면서 조작키를 누르는 게임이나, 온라인 게임도 매번 이와이즈미에게 졌다. 그럴 때마다 다시 붙자면서 떼를 쓰는데 그게 은근 귀여워서 가끔은 일부러 져주기도 했다. 오이카와는 모르겠지만.

 

소소한 일상이 행복했다. 특별하게 하는 것도 없는데. 그냥 영화를 함께 보고, 일상 얘기도 하고,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는 김에 장도 보고오고. 이런 생활이 좀 질리면 드라이브로 기분 전환을 하며 외식도 했다. 오이카와는 늘 웃음꽃을 피웠고, 자신 또한 오이카와와 함께 있어서 행복했다.

 

그래서 편지를 쓰기로 했다. 오이카와가 잠든 새벽, 몰래 방에서 나와 스탠드 불빛에 의지한 채, 펜을 들었다. 오이카와 아마 너가 이 편지를 보고 있으면 나는 이 세상에 없겠지. . 첫줄부터 오글거려서 구겨 버리고 다시 새 종이를 꺼내 들었다. 그는 차분하게 글을 썼다. 오이카와 토오루와 만나기 전의 이와이즈미 하지메를, 연인의 이야기를, 오이카와 토오루를 만난 후의 감정변화를. 엄청 길게 쓸 줄 알았는데 막상 써보니 분량은 얼마 나오지 않았다. 그는 피식 웃었다.

 

세삼 우리사이에 과거가 필요할까?

 

그는 종이를 구기고 다시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오이카와가 봐도 되고, 굳이 보지 않아도 그의 인생에 영향을 끼칠 내용은 없었다. 그는 편지봉투에 편지를 넣어 오이카와가 가장 안 볼법한 책 사이에 끼워두었다. 홀가분해진 기분이 들었다.

 

 

있잖아. 오이카와. 바다에 가고 싶어.”

 

. 그래. 가자, 바다로.”

 

 

두 사람은 바다로 향했다. 오이카와와 바다에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와 드라이브를 바다를 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보러가는 건 처음이었다. 모래사장의 푹신한 모래를 밟으니 기분이 좋았다. 이와이즈미가 먼저 바다로 들어갔다. 시원한 게 좋았다. 곧 오이카와가 따라 들어오려 하자, 그가 먼저 장난으로 바닷물을 뿌렸다. 기습공격에 방어하지 못한 오이카와는 그대로 물을 맞았다. 그도 바다로 뛰어 들어가 이와이즈미에게 바닷물을 뿌리며 장난쳤다. 그러다 도망치는 오이카와를 이와이즈미가 뒤 쫒기도 하였고. 반대로 오이카와가 뒤 쫒기도 하였다. 뛰다가도 나란히 걸었고. 이윽고 나란히 앉아 바다저편을 함께 감상했다. 아마 혼자서는 오지 못했을 것이다. 오이카와가 함께 있어줘서 자신은 바다에 올 수 있었다.

 

그거 아냐. 바다는 그 사람과도 오지 못한 곳이야.

 

그 사람 바다 싫어했거든.

 

마지막에 바다를 와서 다행이다.

 

여기에 온전히 너와의 추억을 만들 수 있어서.

 

 

오이카와.”

 

?”

 

고맙다.”

 

뭐가?”

 

여러모로.”

 

 

타인을 위한 삶을 잠시나마 나를 위한 삶으로 바꿔줘서. 나를 위해 많은 걸 해줘서. 나를 사랑해줘서.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있게 해줘서.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돌렸다. 오이카와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과 오이카와에게 다른 미래가 있었을까, 생각해보았다. 아니. 자신이 연인을 잃었기에 오이카와를 만날 수 있었고, 오이카와가 그 사람을 죽인 영혼 브로커였기에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 오이카와에게 시선을 뗀 뒤, 그의 등을 강하게 내리쳤다. 아얏. 그가 고통을 호소하며 자신에게 시선을 돌렸다.

 

 

미안하다고 하지 마라. 망할 오이카와가.”

 

…….”

 

다 알면서 널 찾아 간 거였고.”

 

…….”

 

네가 쓰레기라는 걸 알면서 선택한 것도 나였고.”

 

…….”

 

네가 뭘 해도, 전부 내 의지였으니까.”

 

…….”

 

그러니까, 쳐 울지 마라. 이 바보가.”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눈물을 닦아준 뒤 먼저 키스를 했다. 짠맛마저 달콤하게 느껴졌다. 내 미각이 이상해진 걸까, 너도 똑같이 느끼는 걸까. 이 눈물의 맛은 자신의 것인지, 오이카와의 것인지 이젠 알 수 없었다.

 

내가 떠난 뒤, 너의 인생이 바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너에게 그럴 인물인지도 잘 모르겠어. 어쩌면 계속 같은 일을 할 수도,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겠지. 그러면서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날 수도 있을 테고, 다른 사랑 만날 수도 있겠지. 나는 다른 사랑을 하는 거, 괜찮다고 생각해. 네가 나를 가끔 나를 기억해 준다면 말이야. . 절대 자살은 하지마라. 자살하면 데리러 가지도 않을 테니까. 어쨌든 내 몫까지 열심히 살다, 천천히 와. 그래서 나중에 올 때 얘깃거리 많이 해줘. 그땐 데리러 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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