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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항아리

[오이이와]연애기간은 한 달上(R-15) 본문

하이큐

[오이이와]연애기간은 한 달上(R-15)

moar 2018. 7. 2. 20:59






🚫 r-15 이상입니다.



🚫트리거 워닝 요소가 있습니다.








손바닥에 들어오는 사이즈의 유리병이 사방의 전시장을 꽉 채우고 있었다. 사이즈는 전부 같았지만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은 각기 다른 형태에 매력이 더해 아름다웠다. 분명 이 방에 들어온 사람들은 대부분 넋을 놓고 빤히 쳐다볼 정도로. 그것들은 아름답지만, 그 내용물의 정체가 사람의 영혼이라는 걸 알아도 예쁘다고 쳐다볼 수 있을까.

 

오이카와 토오루는 그런 생각을 무색하게 만드는 인간이었다. 유리병의 정체를 알고도 익숙하게 들어와 사방의 전시장에 꽉 채워진 유리병을 눈으로 훑고는, 병의 위치를 이리저리 옮겨 거기에 새로운 자리를 만들었다. 그의 손엔 오늘 얻은 영혼이 들려있었다.

 

멀지 않은 근 미래. 현대 과학은 과거의 우리가 상상했던 그 이상으로 발전하였다. 때문에 법도 많이 바뀌었다. 대표적인 예로 죽어가는 사람의 수명을 옮겨 다른 사람의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은 바꾸어보면 타인의 수명을 함부로 뺏을 수 있다는 소리기도 했다. 오이카와 토오루의 경우 후자에 속했다. 그는 타인의 수명이 아닌 생명을 강제로 뺏어 그것을 팔아넘기는 브로커였다. 오이카와 이외에도 이런 브로커들은 암묵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과 오이카와의 차이점을 꼽자면. 그들은 자살을 원하는 사람 혹은 죽어가는 사람의 영혼을 강제로 뺏었고, 오이카와는 멀쩡하게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포함된다는 소리였다.

 

 

"좋아. 좋아. 오늘도 돈 줄이 늘어나서 오이카와씨, 정말 기쁜 걸~?“

 

 

오늘 얻어낸 영혼의 수명은 50년 치. 대략 5백만 엔 이상의 값어치였다. 영혼을 하나 잘만 팔면 평생 먹고 살 정도의 돈이 손에 들어온다.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는 돈에 관심 없었다. 충분히 평생을 펑펑 써도 남는 것이 돈이었다. 그가 집착하는 것은 영혼을 뽑아내기까지의 과정과 그걸 모아 자신의 권력을 다른 놈들한테 상기시키는 것이 전부였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그는 다른 브로커들과 달랐다. 뒷세계에서도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뿐더러, 사교성이 좋아 위험한 사람들과 엮어있기에 그를 건들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였다. 때문에 그에게 접근하는 여자들이 많았다.

 

여자들과 음란하게 노는 것도 슬슬 질렸던 어느 날이었다. 사람의 생명을 강제로 뺏고 그걸 팔던 날. 한 남자가 그를 찾아왔다. 그는 위장회사를 만들어 운영하던 중이었는데, 거기에 속아 목숨을 뺏긴 사람도 없지는 않았기에, 이번에도 멍청한 먹잇감이 실상도 모른 채, 제 죽는 것도 모르고 들어온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생명을 드릴게요.“

 

 

남자는 오이카와에게 다짜고짜 자신의 목적부터 말했다. 그 말에 그는 눈앞의 남자에게 순간 관심이 갔다. 위장회사라도 이곳이 어떤 곳인지 철저히 숨겨져 있을 텐데, 그걸 알면서 제 스스로 찾아왔다? 물론 눈앞의 남자처럼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고 싶어서 브로커를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지는 않았지만. 눈앞의 남자는 그런 사람들과 달랐다. 눈에 힘이 들어간 게 증거였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지금 드리지는 않아요. 저와 서약을 해주세요.“

 

 

남자의 입에는 나온 말은 표정변화 없이 또박또박하고 정갈했다. 오이카와는 서약이라는 말에 경계심을 보였다. 무슨 생각인거지? 그가 입을 열지 않아도 표정으로 이미 묻고 있었기에 남자가 질문에 대답을 했다.

 

 

"저와 한 달간 사귀어주세요. 사랑해달라고 하지 않아요. 그냥 사귀어주세요.“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청천벽력이라 오이카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사귀어달라고? 누구를, 자신과 같은 남자를? 그럼 할 때도 여자한테 하듯이 하는 건가? 그러나 혼란스러움도 잠시. 그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 어차피 그에게 오는 벌레들은 다 자신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 그도 그런 부류일 테니까.

 

 

이 오이카와씨 인기가 많아서 곤란하다니까~”

 

 

적당히 가지고 놀다 버릴 새로운 장난감에 그는 벌써부터 즐거웠다.

 

 

그럼 서약서부터 작성해볼까?”

 

 

연애기간은 한 달

@HQ_choa

 

 

 

 

오이카와는 입맛을 다셨다. 이와이즈미 하지메. 서약서에 적힌 이름이었다. 그는 그 이름을 곱씹었다. 이름과 정갈한 글씨체, 다부진 몸매까지. 눈으로 훑고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와이즈미 하지메라는 존재는 오이카와 토오루의 갈증을 계속 부추기고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 자신을 새겨 넣고 싶었다.

 

그날 새벽. 관계를 마친 후, 이와이즈미는 바로 기절했다. 그는 이와이즈미를 바르고 눕혀준 뒤 담배를 들고 베란다로 나왔다.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을 빨은 뒤 내뱉었다. 그동안 많은 여자와 만나 이 짓을 했었지만 오이카와는 남자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실 관계가 맘에 안 들면 적당히 가지고 놀다가 버릴 생각이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이와이즈미와의 관계가 마음에든 그는 자신의 입술을 훑었다. 동이 밝아오고 있었다.

 

오전 8. 오이카와는 욕실로 향해 샤워를 하고, 그의 사이즈에 맞게 제작된 정장과 손목시계를 찼다. 그가 이와이즈미의 방에 들어간 건 그로부터 50분 뒤였다.

 

 

일어났네?”

 

 

이와이즈미가 흠칫 몸을 떨었다. 아마 갑자기 들어온 것에 놀라서 그런 게 아닐까. 오이카와는 예상했다. 그는 이와이즈미에게 손짓을 했다. 이와이즈미는 우물쭈물하다 이불로 몸을 대충 가린 뒤 그에게 쭈뼛쭈뼛 다가갔다. 오이카와는 그 모습이 굼벵이 같아 픽, 웃음이 나왔다. 이와이즈미의 고개가 숙여졌다. 자신 앞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와이즈미를 위아래로 훑어보다 입을 열었다.

 

 

이미 다 본 사이인데~ 그렇게 창피해?”

 

 

……….”

 

 

오이카와는 더 놀려줄까 싶었지만 이제 슬슬 나가야 할 시간이라 거기까지만 했다. 그는 이와이즈미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이와이즈미는 선뜻 받지 못하고 빤히 보았다. 안 받아? 오이카와가 퉁명스레 말하면 그제야 핸드폰을 받아들였다. 표정에서부터 왜 이걸 자신에게 주냐고 쓰여 있었다. 오이카와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닌 다른 설명을 하였다.

 

 

용건이 있으면 그 폰으로 연락해. 그리고 어디 나간다면 반드시 보고하고. 8시까지는 무조건 이 침실로 돌아와 있어야 해.”

 

.”

 

 

이와이즈미의 대답이 만족스러운 오이카와는 방에서 나왔다. 곧 핸드폰을 꺼내 익숙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흐르더니 달칵, 전화 받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14시 전까지 입금주신다면, A지하철 로커 함에 병을 넣어두도록 하겠습니다. 돈을 보내는 장소는 저희 직원에게 전송해두라고 일러놓겠습니다. 그럼 좋을 하루를. 거기까지 말한 뒤 오이카와는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브로커 중에서도 톱을 달리고 있어서, 그에게 생명을 받고 싶다는 사람은 많았다. 짧게는 30년 길게는 60년까지. 다양한 사연과 여러 가지 이유로 그들은 생에 집착하고 있었다. 의뢰자들은 브로커인 그와 상담을 할 때 대부분 이런 질문을 하였다.

 

선생님은 생명을 직접 얻으시니까 오래 살겠어요. 부러워요.’

 

오이카와는 그 질문에 웃어넘겼다. 사적인 말이었으니까. 그 웃음도 의뢰자들은 아마 겸손한 웃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의뢰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한 번도 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인간은 다 각자 주어진 생이 있으니까. 주어진 생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욕심을 부리는 건 탐욕이었다. 그렇다면 그 인간의 탐욕을 채워주는 자신은 대략 어느 위치일까. 그들에게 자신은 신일까, 악마일까, 혹은 사신일까. 어떻게 생각하던 그가 알 바는 아니었다. 타인의 생명을 빼앗고, 그걸 높은 가격으로 다른 사람에 판다. 그는 자신의 역할만 수행하면 되었으니까.

 

 

늦었군, 오이카와.”

 

이게 누구야. 어쩐 일로 오셨대~?”

 

 

회사에 도착하기 전, 머릿속으로 해야 할 일을 체크를 하나씩 했다. 오늘도 자신의 컬렉션이 될 병이 있을지 기대하며, 회사에 발을 들일 생각이었다. 회사 건물에 도착한 그는 주위부터 둘러보았다. 회사에 가까워질수록 느낌이 영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가끔 자신과 같은 부류의, 혹은 그 이상의 손님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어 별로 놀랄 일은 아니지만. 싫은 기분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지라 바짝 긴장을 세우고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맞이하는 손님은 오이카와 토오루가 마주하고 싶지도 않은 사람 중에서도 손에 꼽는 인간이었다. 우시지마 와카토시. 시라토리자와 조직의 차기보스님이셨다. 그가 팔짱을 끼고 말을 비꼬니까 그의 옆에 있던 조직의 일개미가 그에게 총을 겨눴다. 오이카와는 그 일개미의 행동에 반응을 했다. 감히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것 자체가 같잖았지만 양팔을 올려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사인을 보냈다.

 

 

시라부. 괜찮다.”

 

 

우시지마의 말에 그는 총을 내렸다. 오이카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시지마는 그에게 시선을 놓지 않았다. 그 시선에 견디다 못한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에게 시선을 돌렸다. 눈을 맞추는 조차도 짜증이 났다. 눈앞의 남자는 눈치가 더럽게 없기로 유명해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한들 표정하나 안 바뀌었기 때문이다. 즉 속을 떠보기 위한 도발은 통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대체 어떻게 이 남자가 어떻게 차기보스자리까지 올라갔는지 오이카와 토오루로선 미스터리 그 자체였다. 그는 우시지마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그래서, 차기보스님께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어인일로 찾아왔을 까요~?”

 

오이카와. 지금이라도 시라토리자와 밑으로.”

 

 

. 오이카와는 자신 앞에 놓여있던 커피 잔을 들어 올려 받침잔 아래로 내려쳤다. 우시지마의 말이 끊기는 것과 동시에 삽시간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오이카와는 싱글벙글한 표정과 행동으로 그에게 엿을 날렸다. 아마 자신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우리 직원이 타준 차 맛있지? 오이카와는 화제를 돌렸다. 아니. 그것은 경고였다.

 

 

다 마셨으면 이제 일하러 가야 하지 않겠어?”

 

 

먼저 자리를 뜬 건 오이카와였다.

 

우시지마가 찾아오는 바람에 그의 하루는 엉망이었다. 스케줄이 꼬이거나 일에서의 실수는 없었지만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결국 1시간 일찍 퇴근했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오이카와는 얼른 이와이즈미를 만나고 싶었다. 만나서 진득하게 그를 안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는 전용차 뒷좌석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가 펜트 하우스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20분이 지난 후였다. 지문인식 센서가 달린 잠금키를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불이 꺼져있었다. 미간을 찌푸린 그는, 핸드폰부터 찾았다. 오늘 이와이즈미에게서 연락 온 전화나, 문자는 없었다. 그럼에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전화기록과 메시지까지 뒤졌다. 그에게 온 연락은 역시 없었다. 자고 있나? 그는 신발을 벗고 침실로 향했다. 없었다. 그는 당장 전화할까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어차피 오늘은 날을 제대로 잡친 날이니까. 째깍째깍. 벽걸이 시계의 초침소리가 그의 귓가를 파고 들었다. 그는 불도 안 켜고 이와이즈미를 기다렸다. 그가 꼬박 20분을 기다렸을 때 현관 쪽에서 번호키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그토록 기다리던 이와이즈미의 모습이 드러났다. . 불이 켜졌다. 어둠에 익숙해있던 눈이 갑자기 빛을 보게 되니 인상이 쓰였다. 이와이즈미가 흠칫, 몸을 떨었다.

 

 

어디 다녀와?”

 

저기그러니까.”

 

 

마트봉투를 들고 있던 이와이즈미의 손이 떨고 있었다.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 눈동자가 심하게 떨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가 그를 끌고 갔다. 그는 이와이즈미를 침대위로 내동댕이쳤다. 그 동안 만나본 여자들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남자가 자신을 선택해서 다행이었다. 좀 더 빨리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이와이즈미와 연애를 시작한지 벌써 일주일이 되 가던 날. 오이카와는 그와의 연애보다 관계가 질리기 시작했다. 그 어떤 여자와 비교할 수 없는데. 내가 갖기는 좀 질리고 남 주기는 아깝고. 이번엔 좀 오래갈 줄 알았는데.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담배 재를 털어내, 다시 입에 물었다. 이와이즈미를 만나기 전의 오이카와 토오루는 연애가 질리면 바로 사람을 갈아타는 사람이었다. 그 만남은 하나같이 오래가지 못해서. 자신은 오래 연애를 할 수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왠지 모를 미련이 남았다.

 

 

넌 왜 나랑 사귀는 거야?”

 

좋아하니까요.”

 

 

일주일이 되던 날. 오이카와는 그가 왜 자신과 사귀어달라고 했는지 문득 궁금해서 물어봤다.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살짝 긴장한 자신과는 달리 이와이즈미는 대답은 거침없었다. 마음의 준비가 되기도 전에 대답을 해버리는 그가 야속하기만 했다. 그에게 좋아한다는 말은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고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여자는 명예와 지위를, 오이카와는 재미를. 근데 이와이즈미가 하는 말은 다르게 다가왔다. 그게 나쁘지 않아서.

 

무드 없네.”

 

궁시렁거린 소리를 이와이즈미가 들었는지 시선이 돌아갔다. 오이카와는 발뺌했다. 자신의 생각을 들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만큼 자존심이 상하는 일은 또 없으니까. 그는 이와이즈미의 시선을 무시한 채 먼저 자리를 피했다. 그의 속마음을 알고 싶다. 그렇게 생각한 날이었다.

 

 

오늘 나랑 저녁 먹을 거니까, 미리 준비해 놔.”

 

 

2주차가 시작 된지 얼마 안 된 날이었다. 오이카와의 말에 이와이즈미는 살짝 놀란 표정을 보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그가 재밌어, 저도 모르게 픽 웃어버렸다. 오이카와는 펜트 하우스를 나오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익숙하게 번호를 누른 다음. 통화버튼을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방 목소리가 들렸다. 예약 좀 하려고요. 오이카와가 입을 열자, 지배인은 친숙하게 그의 안내를 도왔다. 오이카와가 예약한 곳은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중에서도 손에 몇 꼽히는 곳 중 하나였다. 예약을 마친 그는 이와이즈미와 보낼 저녁이 벌써부터 기대되었다.

 

평소보다 일을 일부러 일찍 끝낸 오이카와는 맞춤 양복점부터 들렸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고급스럽게 되어있어, 직원이 안내해주는 길을 따라 쭉 걸어갔다. 가게로 들어서자 달라진 분위기와 은은하게 퍼지는 향이 그를 매료시켰다. 점장이 그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더니, 잠시만 기다려달라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는 가죽 소파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턱을 손에 기댔다. 이와이즈미가 어떤 차림으로 자신을 기다리고 기다릴지. 또 식사를 한 뒤, 다음 일정을 생각하고 있었다. 잠시 후. 점장이 그에게 정장 한 벌을 내밀었다. 오이카와는 옷걸이를 잡아 이리저리 둘러봤다. . 역시 만족스러워. 그는 옷을 갈아입고 나와 거울 앞에 섰다.

 

 

어디 불편하신 곳이나 마음에 드는 점은 없으십니까?”

 

 

라인도 좋게 빠졌고, 바지 길이나 어깨선도 전체적으로 괜찮게 나와, 그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감사합니다. 결제를 마친 그가 가게를 나갈 때도 점장은, 뒤도 안 돌아보는 그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왔어.”

 

오셨어요?”

 

 

쭈뼛거리며 그를 마중 나온 이와이즈미의 모습에 오이카와는 순간 넋을 잃고 말았다. 후줄근하게 입고 다니던 그를 보다, 정장 입은 모습을 보니 딴 사람 같았기 때문이었다.

 

 

오이카와씨?”

 

.”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와이즈미가 제법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당황한 그는 대답을 얼버무리고는 뒤를 돌아 걸어갔다. 이와이즈미도 뒤늦게 그의 뒤를 따랐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오이카와는 운전하면서 힐끔 이와이즈미를 쳐다봤다. 이와이즈미는 차 앞 유리 너머를 보고 있었다. 여자들은 자신이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아도 재잘거리기 바쁘던데. 그 또한 남자라서 그럴까. 오이카와는 이 정적이 난생 처음이라 답답하기만 했다.

 

도착할 때까지 둘 사이에의 정적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멀리서 발렛파킹 직원이 그들에게 인사를 하며 서비스가 필요 하냐 여쭤보았다. 오이카와는 시동을 끈 뒤, 직원에게 키를 넘겨주고 차에서 내렸다. 이와이즈미도 뒤늦게 따라 내렸다. 그는 자신이 생각했던 완벽한 계획이 벌써부터 틀어진 것만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들어갈까?”

 

 

그래도 이와이즈미 앞에서 티를 내고 싶지 않은 그였다.

 

 

어서오십시오. 오이카와님.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웨이트리스를 따라간 곳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힐끗 쳐다보다 순간 눈이 마주쳤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만 하고 있을 때, 먼저 눈을 돌린 건 이와이즈미였다. . 갈 곳 잃은 눈동자는 시선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왜 그런 기분이 느껴지는지 모르겠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59층엔 아름다운 야경과 캔들 홀더가 은은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테이블엔 몇 송이의 꽃이 장식되어 더욱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웨이트리스는 그 말을 남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오이카와는 걸어가 세팅을 둘러보곤, 유리창에 비친 이와이즈미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뻣뻣하게 굳어 아까부터 계속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에야 말로 그는 먼저 다가가, 왼손엔 허리를 오른손엔 그의 손을 잡았다. 이와이즈미의 몸이 무척 따뜻했다. 이렇게 따뜻했었나 싶을 정도로.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건 난생 처음이라 이질감마저 들었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가 어려웠다. 자신이 해본 연애는 방탕하고 음란하고 끈적이는 연애 밖에 없는데. 그는 그 여자들과 똑같이 음란하고 끈적이는 연애를 하지만 그 여자들과는 다르게 깨끗했다. 그 말은 즉 자신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곧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에게서 떨어졌다.

 

 

자리에 앉아.”

 

……….”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에스코트했다. 이와이즈미는 그의 눈치를 한번 살피고는, 자리에 앉았다. 오이카와도 맞은편에 앉았다. 얼마 후. 소믈리에가 그들 앞에 나타나,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을 잔에 따라주며 설명을 하였다. 오이카와는 글라스에 담겨진 와인의 색과 향기 그리고 맛을 천천히 음미했다. 맞은편의 이와이즈미 역시 천천히 맛을 음미했다. 어때 괜찮아? 그의 질문에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볼이 살짝 발갛게 달아올라 오이카와는 픽 웃었다.

 

 

정말 귀엽다. 이와이즈미.”

 

.”

 

, 왜 그래?”

 

처음이네요. 당신이 내 이름을 부르는 거.”

 

 

이와이즈미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띄어있었다. . 그랬던가? 오이카와는 과거를 돌이켜봤다. 그의 말대로 자신은 한 번도 이름을 부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 이제부터 많이 부르면 되는 거 아닌가? 그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눈앞에 놓여있는 스테이크를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해 맛을 음미한 뒤, 맞은편 이와이즈미를 보았다. 그의 스테이크는 깨끗했다. 포크와 나이프도 사용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맛없어?”

 

? 아뇨.”

 

 

이와이즈미는 그제야 포크와 나이프를 들어, 스테이크를 썰어먹었다. 맛있어요.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는 기분이 좋았다. 그가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먹던 것도 놔두고 그를 쳐다보았다. 야경의 밤이 깊어져갔다.

 

오이카와는 그 뒤로도 이와이즈미와 만나 평범한 데이트를 했다. 영화를 보고, 드라이브도 하고, 저녁도 먹고. 가끔은 점심식사도 같이 했다. 처음엔 데이트도 이름도 어색했지만 점점 적응해갔다. 이름을 부르는 횟수도 점차 늘었다. 그리고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게 되었다. 오이카와는 그와 함께 보내는 매일 매일이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2주차가 끝나갈 무렵. 그가 입을 열었다. 이와이즈미가 한참 저녁을 준비하던 때였다.

 

 

이와이즈미.”

 

?”

 

너무 길어! 하지메, 라고 불러도 돼?”

 

………….”

 

 

이와이즈미의 얼굴에 그림자가 보였다. 아차.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은 오이카와는 머리를 굴려 다른 별명을 생각했다. 그럼 이와쨩이라고 불러도 돼? 이와이즈미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그건 무슨 별명이냐고 반문했다. 이와이즈미의 표정이 풀렸기에 오이카와는 이와쨩이라며 그에게 장난을 쳤다. 이와이즈미는 한숨을 쉬었다. 알아서 하라는 의미였다. 오이카와는 자신이 좀 더 그와 가까워진 거 같아 기뻤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거짓 미소를 짓던 그가, 어느새 진심으로 웃고 있었다. 모든 일에 자기가 우선이었던 그의 중심은 이제 이와이즈미였다.

 

그가 그 사실을 깨달은 건 불과 며칠 전이었다. 회사를 마치고 펜트 하우스로 돌아가던 길. 길거리 상인이 내놓은 물건 중에 하나가 그의 눈에 꽂혔다. 모양도 도색도 제법 깔끔한 고질라 펜던트였다. 의외로 퀄리티가 좋다며 속으로 칭찬한 뒤, 그것을 내려놓으려고 했었다. 그냥 다시 가던 길을 가려고 했는데, 미련이 그를 붙잡았다. 결국 그는 그것을 구매했다. 이와이즈미가 떠올렸다. 얼마 전 그의 핸드폰 배경화면에 고질라를 본 것 같기도 했다.

 

 

기뻐할까.”

 

 

기뻐할 그를 상상하니 굉장히 기분이 좋아져, 빨리 건네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하우스로 돌아가 이와이즈미에게 선물로 건네주니 그가 처음 보는 얼굴로 환하게 웃었으니까 말이다. 오이카와는 깨달았다. 뭉클했던 감정이 좋아한다는 마음이란 걸. 자신이 이와이즈미를 좋아하는 만큼, 그도 자신을 좋아해주기를 처음으로 바랐다. 행복에만 눈에 멀어졌던 바람일까.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와의 서약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벌써 3주차가 다가왔다. 평소와 같이 회사에서 계약서를 정리하던 오이카와는 딱 봐도 계약서가 아닌 종이를 발견했다. 그가 잊고 있었던 이와이즈미와의 서약서였다. 서약 날짜는 이번 달 1. 지금은 벌써 중후반이었다. 계약서였다면 갑 쪽에서 그냥 찢고 파기하면 끝나지만, 서약서는 간단하게 파기할 수 있는 종이가 아니었다. 만약 그가 서약이 아닌 계약서를 얘기했었어도 아마 자신은 서약서를 내밀었을 거다. 대게 죽기를 원하는 자들 중에 서약을 택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본인이 마음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였다. 때문에 대게의 사람들은 계약서를 두 장씩 썼다. 하나는 생명을 가져가도 된다는 계약서, 나머지 하나는 갑 쪽에서 파기 금지 계약서를. 오이카와는 핸드폰으로 서약서 파기 전문가와 전화를 시도하려다 포기했다.

 

왜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까.

 

 

이와쨩.”

 

 

자신은 아직도 이와이즈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 사실이 그를 슬프게 하였다.

 

 

이와쨩 있잖아서약서 파기하면 안 될까?”

 

……….”

 

이와쨩?”

 

갑자기 왜?”

 

 

칼질을 하던 이와이즈미의 손길이 멈췄다. 그는 고개도 들지 않았다. 고개를 숙여서 인지, 기분을 상하게 만든 건지. 그의 얼굴엔 그림자가 드리워있었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 질문에 대답하고 싶었다. 나는 널 좋아해. 남은 시간을 너와 함께 보내고 싶어. 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오이카와의 질문에 긍정해주지 않은 것이 첫 번째 이유. 두 번째 이유는 그의 어깨가 떨렸다. 그가 소리죽여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외면하고 싶었던 것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엄청 화가 날 줄 알았다. 자신은 이기적이고, 자기 자신밖에 모르니까. 그러나 차분했다.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차분했다. 그는 직감했다. 지금 그에게 다가가면 그의 진심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방황하고 있는 이와이즈미 또한 자신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오이카와 토오루는 망설임 없이 그에게 한 발작 다가갔다.

 

 

이와쨩.”

 

…….”

 

이와쨩 말이야. 왜 내게 찾아왔던 거야?”

 

…….”

 

왜 계약서가 아닌 서약서를 써달라고 말했어?”

 

…….”

 

왜 죽고 싶었던 거야?”

 

…….”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에게 달려가 그를 밀어 넘어뜨렸다. 당황한 오이카와가 그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입을 열자 이와이즈미가 그의 입을 자신의 입술로 막았다. 혀가 서툴게 오이카와의 혀를 훑었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밀어냈지만 그럴수록 이와이즈미는 그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버림받지 않기 위해 애쓰는, 작고 연약해 보였다.

 

 

오이카와. 하자.”

 

…….”

 

엉망진창으로 하자.”

 

싫어.”

 

.”

 

이와쨩이 다치는 거 싫어.”

 

이제 와서. 이제 와서! 난폭하게 안을 거 다 안아줘 놓고, ? 내가 다치는 게 싫다고?”

 

 

이와이즈미가 주먹지어 오이카와의 가슴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오이카와는 그와 함께 웃고 장난을 쳤을 때가 문득 떠올렸다. 그때 맞았던 주먹은 그때와 같은 주먹인가 싶을 정도로 연약해서. 그는 이와이즈미를 품에 안았다. 그가 거세게 저항할수록 그를 품안에 가뒀다. 미안해 이와쨩.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미안해. 오이카와는 울면서 사죄했다. 그가 잘못했다고 빌면 빌수록, 이와이즈미의 거세던 반항은 약해져갔다. 오이카와를 때리던 주먹은 어느새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울고 있었다.

 

 

사랑해, 이와쨩.”

 

………나도.”

 

 

눈물을 쏟고 눈을 마주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입술을 맞췄다. 혀가 들어가 서로의 입술을 훑은 뒤, 입술이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입을 맞췄다.

 

그동안의 관계와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자신이 위주였던 난폭한 것도 좋았지만 쾌락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쾌락뿐만 아닌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그에게 사랑을 주는 것이 뿌듯했고, 사랑을 받아 눈물이 날 거 같았다. 오이카와는 천천히 움직였다. 최대한 느끼는 부분에 닿도록 노력했다.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에게 매달렸다. 사랑해. 사랑해 이와쨩. 오이카와 토오루는 끊임없이 사랑을 속삭였다.

 

 

오이카와. 서약. 없었던 걸로 하자.”

 

 

관계가 끝난 뒤의 밤. 침대에 누워 서로를 바라보던 중, 이와이즈미가 꺼낸 말이었다. 그 말이 기뻐서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끌어안았다.

 

 

. 고마워. 내가 더 잘해줄게. 이와쨩만 바라 볼 거야. 너만 있으면 돼. 너만. 오직 너만.”

 

그래. 나도.”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에게 정말 잘해줄 생각이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들어 줄 것이고, 그가 싫다는 것은 하지 않을 거라 마음먹었다. 매일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그와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생각에 꿈에 부풀었다. 그래. 이제 행복해지는 일만 남았다. 남았을 터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와이즈미가 승낙을 한 그 다음날부터 오이카와는 서약을 없애기 위해 전문가를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어렵다는 말 뿐이었다. 순간 잘못 이해한 줄 알고 다시 되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 뭐가 어렵다는 건데요? 늘 어떤 상황에서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그가 울기 일보직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전문가는 딱한 얼굴로 그에게 차근차근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고 있었을 터지만. 오이카와 귀엔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이와이즈미와 함께 하지 못한다. 그 사실만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으니까.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펜트 하우스로 돌아가던 중. 그는 망설이고 있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또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운전대를 잡은 채 고개를 푹 숙여 한숨을 내뱉었다. 실망하고 슬퍼할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발걸음이 무거웠다.

 

 

왔냐.”

 

. 다녀왔어.”

 

 

인사하는 자신의 말투와 표정이 괜찮은지 알 수 없어서 최대한 입 꼬리를 올렸다. 이와이즈미는 별말 없이 다시 부엌으로 돌아갔다. 요리를 하다 온 모양인지 앞치마가 둘러져 있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오이카와는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왔다. 맛있는 냄새가 났다. 식탁위에 음식이 하나, 둘 늘어날수록 마음이 무거웠다. 말해야 하는데. 어느 타이밍에 말을 꺼내야 될지 몰라 그는 이와이즈미의 눈치만 봤다. 이와이즈미는 아직 낌새를 못 느낀 건지 혹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을 하는 건지. 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잠시 고민했다. 말을 할지, 그냥 말을 하지 말지. 그의 선택은 후자였다. 아직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혹시 방법이 있는데 괜히 지금 말했다가 그에게 상처와 걱정을 안겨줄 까봐. 때문에 그는 오늘 들은 사실을 외면하기로 했다.

 

 

미안. 오늘도 늦을 거 같아. 피곤하면 먼저 자.”

 

그래.”

 

 

펜트 하우스로 돌아가는 시간은 나날이 늦어져갔다. 어떻게든 서약을 해지하기 위해서였다. 서약 해지는 절차도 까다롭고 해지가 되는 사례도 적기 때문에 전문가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오이카와는 그럼에도 상관없었다. 어떻게든 해지를 할 수 있다면. 돈도 시간도 다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다 똑같았다. 힘들 거 같다. 어떻게든 안 되냐고 사정을 해도 서약조건이 이미 생명이라 서약을 파기해도 목숨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소리가 대부분이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전부를 이렇게 찾았는데. 바로 눈앞에서 사라지는 꼴을 보고만 있으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는 수첩을 꺼내들었다. 볼펜이 끼워진 페이지엔 각 인물들의 이름이 적혀있었고 몇몇은 X로 그어져있었다. 오이카와는 볼펜을 들어 X를 그었다. 남은 사람은 이제 1. 이제 이 사람에게 희망을 걸어야했다.

 

그렇게 3주차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오늘도 늦어?”

 

. 먼저 자고 있어, 이와쨩.”

 

 

이와이즈미의 얼굴에 실망감이 가득했다. 오이카와는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연인을 일주일간 혼자 외롭게 만들고 있다는 걸. 비록 지금은 외롭게 만들어도 그것 또한 잠시뿐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또 이와이즈미를 외롭게 만들었다. 죄책감 속에 희망이 보였지만 반대로 희망을 생각하니 죄책감이 자리 잡아서. 그는 하우스에서 나올 때 이와이즈미에게 사랑한다며 안아주지 못한 걸 뒤늦게 깨달았다. 하아. 후회가 한숨이 되어 입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어떻게든 안 되겠습니까.”

 

흐음.”

 

 

허름한 집 안엔 최소한의 가구가 전부였다. 오이카와는 무릎을 꿇어 탁자위에 서약서를 올렸다. 양반다리로 앉아 서약서를 훑어보던 그는 오이카와의 마지막 희망인 고토부키였다. 그는 이름도 모를 작은 시골에 살고 있었는데, 그가 있는 곳은 특히 다른 전문가들과 다르게 살고 있는 위치가 꽁꽁 숨겨져 있었기에 수소문 끝에 찾아갈 수 있었다. 그는 한참동안 서약서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서약서를 내리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마지막 희망이 완전히 사라져 그 속엔 이제 죄책감 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펜트 하우스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자정을 달리고 있었다. 자신을 기다려줬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한편으론 자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거실로 들어섰다. 캄캄한 어둠속에 고요함이 가득했다. 그는 대충 옷을 갈아입고 침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문 너머로 무슨 소리가 들려 귀를 기울였다. 훌쩍이는 소리였다. 이와이즈미의 울고 있는 소리였다. 오이카와는 방문을 열지 못했다.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를 안아주고 달래주며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었지만. 그를 슬프게 한 원인이 자신인지라 더 다가갈 수 없었다. 결국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 방문 앞에서 몸을 웅크린 그는 이와이즈미의 소리가 잠잠해 질 때까지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 서약서의 만료일이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

 

 

오늘 출근 안하냐?”

 

좋은 아침 이와쨩~. 오늘부터 휴가 냈어.”

 

 

긴 새벽이 끝난 후에 찾아온 아침. 오이카와가 한창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 이와이즈미가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왔다. 그동안 이와이즈미가 아침을 만들고 오이카와가 출근 준비를 한 터라 익숙지 않은 풍경에 이와이즈미가 입을 열었다. 오이카와는 그에게 환하게 웃으며 대답을 했다. 사실 휴가 같은 건 없었다. 그런 걸 할 수 있는 신분도 아니었다. 자신은 이미 진작부터 이와이즈미의 곁에 있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자신의 그 이기적인 희망 때문에. 오이카와는 예쁘게 담긴 토스트와 계란프라이를 내밀었다. 그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접시 위에 놓인 음식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쓴웃음이 나왔다. 그래. 이제부터라도. 지금부터라도 지난 일주일의 몫까지 추억을 가득 만들자고. 그는 그렇게 결심했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와 한시라도 안 떨어지려고 하였다. 가끔은 이와이즈미가 화장실 가는데 따라 들어가려고 한 탓에 얻어맞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딱히 특별하게 하는 것도 없었고. 그냥 그와 소소하게 집에서 영화나 게임을 하고 재밌었던 일상 얘기를 하며 웃기도하고. 밖으로 나간다면 산책이나 장을 보러 나갔으며. 그보다 더 멀리 드라이브를 하러 가거나 가끔 외식을 하러 나가는 것이 전부였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와 함께 있어서 행복했고. 이와이즈미도 오이카와를 보면서 웃었다.

 

있지, 이와쨩. 왜 행복은 한순간에 지나가버릴까?

 

 

있잖아. 오이카와. 바다에 가고 싶어.”

 

. 그래. 가자, 바다로.”

 

 

두 사람은 바다로 갔다. 오이카와는 좀 의아함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동안 자신이 몇 번 바다로 가지 않겠냐고 권유했을 때, 이와이즈미가 거절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바다를 보고 싶을 땐 드라이브를 하면서 본 게 전부였다. 오랜만에 모래사장의 푹신한 모래를 밟으니 기분이 좋았다. 이와이즈미가 먼저 바다로 들어갔다. 곧 오이카와가 따라 들어가려고 할 때, 그가 바닷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오이카와도 바다로 뛰어 들어가 바닷물을 이와이즈미에게 뿌리며 장난쳤다. 그러다 도망치는 오이카와를 이와이즈미가 뒤 쫒기도 하였고. 반대로 오이카와가 뒤 쫒기도 하였다. 뛰다가도 나란히 걸었고. 이윽고 나란히 앉아 바다저편을 함께 감상했다.

 

 

오이카와.”

 

?”

 

고맙다.”

 

뭐가?”

 

여러모로.”

 

 

뭘 고맙다고 하는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순간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좀 더 그의 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그를 외롭게 만들었던 사실이. 일찍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렸다면, 더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서 사랑 했을 텐데. 이와쨩, 미안해. 고개를 들지 못했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기 싫은데.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모습과 좋은 것들만 보여주고 싶은데. 후회하지 않으려 해도, 떠나간 시간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하나를 후회하면 또 하나가 늘어나고. 돌이켜보면 후회되는 일 뿐이라. 죄책감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후회의 늪에서 발버둥도 못치고 깊이 빨려 들어갈 때, 강렬한 통증이 전해졌다. 현실로 들어온 오이카와는 통증을 호소하며 이와이즈미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와이즈미는 덤덤한 표정으로 오이카와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가 말을 꺼내기 무섭게 이와이즈미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고 하지 마라. 망할 오이카와가.”

 

…….”

 

다 알면서 널 찾아 간 거였고.”

 

…….”

 

네가 쓰레기라는 걸 알면서 선택한 것도 나였고.”

 

…….”

 

네가 뭘 해도, 전부 내 의지였으니까.”

 

…….”

 

그러니까, 쳐 울지 마라. 이 바보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이와이즈가 닦아주었다. 그가 오이카와에게 먼저 키스를 하였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짠맛이 나는 달콤한 마지막 키스였다.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를 떠나보낸 뒤. 그는 브로커의 일을 빠르게 정리했다. 뒷세계에서 높은 지위와 권력을 가진 터라 바로 나오려면 손가락 하나는 그들에게 바쳐야했지만 말이다. 그는 붕대로 감겨진 없어진 손가락을 보았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일에서 발을 뗀다면 어떤 기분일지 아주 오래전 상상한 적이 있었다. 나올 일은 없겠지만, 미련과 후회가 가득하지 않을까라고 아주 오래전에 상상한 것과 달리. 개운했다.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그는 정장의 안쪽 주머니에서 편지봉투를 조심히 꺼내들었다. 아직 뜯겨진 흔적도 없는 이 편지는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 토오루에게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다. 그와 작별을 한 후, 짐정리를 하다 우연히 발견되었다. 잘 보지 않는 책 사이에 꽂혀있었다. 당시엔 뜯어보는 게 무서워서 읽기 못했다. 그걸 읽으면 이와이즈미를 완전히 놓아줘야 할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심호흡을 한 끝에 망설임 없이 편지를 열었다. 편지봉투도 무색이었는데, 편지지도 무색이었다. 이와이즈미 답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글씨체는 서약서에서 본 이후로는 처음인가. 오이카와 토오루에게, 라고 쓰인 글씨를 조심스레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리고 편지를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오이카와 토오루의 시점


FIN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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